올해로 '페이스북(페북) 생활' 2년 차인 직장인 홍모(40)씨는 얼마 전 페북 친구가 400명을 넘긴 기념으로 일종의 자축 이벤트를 벌였다. 400번째 친구가 되어준 사람에게 상품권을 주는 깜짝 행사를 진행했는데, 입소문을 탔는지 하루 동안 수십 명이 친구 신청을 해왔다. 덕분에 홍 씨는 '400명 친구' 고지를 넘은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500명 친구'를 내다보게 됐다. 하지만 홍씨는 고민이 생겼다. 가벼운 이야기로 지인들끼리 나누던 페북 공간이 어느 틈에 원치 않는 콘텐츠들로 채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상품 홍보는 물론, 최근에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페북 친구들의 선거운동 콘텐츠들이 뉴스피드(페북의 타임라인)를 점령하고 있다. 홍씨는 "요즘 장터처럼 북적거리는 페북에 점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며 "페북 탈퇴냐 인맥 정리냐는 기로에 서서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지인들과 즐기려 시작한 페북이 골칫거리가 된 것이다.
한국의 페북 사용자는 어느새 500만 명 가량으로 추산된다. 사용자 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과 비례해 점점 혼탁해지는 뉴스피드와 정신없이 업데이트되는 앱들의 진화를 쫓다 지친 나머지 페북과 '절교'하는 사용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쓸 말도 없고, 써도 반응이 없고, 남의 글에서도 건질만한 정보가 없다"며 소극적으로 페북을 이용하다 그만두는 사례도 있고, "뉴스피드엔 죄다 남들의 여행, 결혼, 유식하고 좋은 이야기만 있어 자존심이 상했다"며 '잘 나가는' 페북 친구들의 일상에 마음이 상해 계정을 삭제한 사례도 있다.
이달 초 미국에서 열린 '성격 및 사회심리학 협회'의 연례회의에서는 페북 친구가 354명이 넘으면 페북 생활을 통해 느끼는 행복감이 떨어지기 시작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스페인 마드리드 IE 비즈니스 스쿨에서 시행한 연구에서 실험에 참가한 18세~65세 사이의 페북 이용자들에게 뉴스피드를 본 직후 자신의 삶의 만족도 조사를 하자 페북 친구가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자신에게 더 낮은 점수를 준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피드을 통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페북 친구들의 '좋은 소식 행렬'을 감상하면 할수록 상대적으로 자신이 느끼는 행복감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개인정보가 끊임없이 수집돼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페북 계정을 통해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것도 페북 이용자들의 행복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페북의 폐쇄적인 개인정보 정책에 반기를 든 사람들은 'quitfacebookday.com''sickfacebook.com' 등을 통해 안티 페북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최근에는 큰 광장인 페북에 부담을 느낀 사람들을 겨냥해 소수의 사람들끼리만 공유하는 '작은 페북'들이 등장했다. 친구를 최대 150명까지만 맺을 수 있고, 페북과 달리 친구가 아니면 절대 나의 글을 볼 수 없는 소수정예 SNS인 'Path'가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페북을 생산적으로 이용해 행복감과 만족도를 높이려면 수동적인 친구 맺기보다는 적극적인 사람찾기가 더 중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윤영민 한양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많은 이용자들이 페북의 뉴스피드가 직접 글을 쓰는 담벼락만큼이나 자신이 편집권을 가지고 만드는 공간이란 점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적 호기심이 많은 페북 친구의 친구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양질의 정보를 올리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친구를 맺는다면 타임라인의 정보들은 완전히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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