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활동하는 한 사진작가에게 요즘 어디에서 작업하냐고 물었다가 "노트북과 카메라만 있으면 어디든 작업실"이란 답을 듣고 머쓱했던 적이 있다. 하긴 예술가란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엄연히 존재하는 어떤 경계를 늘 넘나드는 존재가 아닌가.
22일 서울 동숭동 아르코미술관에서 개막한 '노마딕 리포트'전은 20여명의 미술작가가 지난해 작정하고 들어간 오지의 이동식 작업실에서 길어 올린 영감의 결과물을 선보인 자리다. 대여섯 명씩 몽골 고비사막, 남극, 중국 윈난성과 이란 마술레 등에서 보름간 머물며 사람, 자연, 문화와 교류한 흔적이 사진, 영상, 설치, 소설 등 60여점으로 남았다. 극한의 환경을 체험한 작가들 작품의 이색적 풍광 속엔 시간과 생명, 그리고 죽음에 대한 통찰이 담겼다.
2010년 국내 구제역 파동에서 폭력적인 죽임의 현장을 목격한 후 줄곧 죽음에 관한 작업을 해온 이수영 작가는 몽골 고비사막에서 풍장(風葬)의 현장을 찾아 다녔다. "햇빛과 바람에 점점 사라져가는 동물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살아있는 존재와 죽어간 동물의 영매가 돼 위령 퍼포먼스를 했지요." 전시장엔 퍼포먼스 사진, 영상과 함께 9개의 관과 동물 뼈가 설치됐다. 결국엔 구제역으로 죽어간 동물에 대한 위로인 셈이다.
백야의 느낌을 형광등 불빛으로 재현한 남극팀 전시에는 유빙이 녹아 내리는 장면과 소리, 특이 식물과 펭귄 무리 등이 펼쳐진다. "남극의 밤은 투명한 푸른 담요로 감싼 것 같다"고 말한 김승영 작가는 이런 감흥을 파란 방으로 재현했다. 광모 작가는 마리안 소만 빙벽에서 1만년이란 긴 역사를 포착했다. 빙벽의 패턴을 재구성하거나 바위와 얼음덩어리를 배치한 사진을 통해 우리가 잊고 지냈던 빙하의 역사를 이미지로 보여준다.
전시는 1, 2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몽골, 남극팀의 작업은 3월 14일까지, 중국, 이란팀 전시는 3월 23일부터 4월 15일까지 이어진다. 특히 2부 전시에는 중국과 이란의 작가들도 참여한다. 이번 작업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008년부터 '노마딕 예술가 프로그램'이란 이름으로 진행한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02)760-4850
이인선기자 kell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