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집착남'만의 잘못인가. 22일 박원순 시장 아들의 병역의혹이 사실무근으로 드러나 스스로 의원직에서 물러난 무소속 강용석 의원 사태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으로 인한 부정적 이미지를 벗기 위해 무책임한 폭로와 고소고발을 일삼은 그에게 1차적 책임이 있지만, 그의 주장을 생각 없이 중계하거나 근거가 미약한 줄 알면서도 의혹 확대에 이용한 일부 언론의 책임도 크다. 진실을 파헤치기는커녕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에게 확성기를 대준 받아쓰기 언론이 고소집착남이란 괴물을 키운 것이다.
언론매체가 크게 늘고 뉴스의 유통기간이 갈수록 짧아지면서 중요도보다는 흥미 위주의 보도가 판을 친다. 특히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사안마저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단순화시켜 다루다 보니, 종종 엉뚱한 방향으로 튀기도 한다. 강 전 의원은 사퇴 바로 전날인 21일 박 시장 아들을 형사 고발하겠다며 미리 보도자료를 배포하자, 곧바로 보수논객 변희재씨가 4ㆍ11 총선을 '강용석 vs 박원순' 구도로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리고 인터넷 매체들을 중심으로 퍼나르기식 보도가 이어졌다.
강 전 의원이 벌인 고소 사건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파장이 확산됐다. 매스미디어가 특정 이슈를 강조하거나 부각시켜 수용자들로 하여금 중요하게 인식하도록 만든다는 '의제 설정 (Agenda setting)' 기능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언론이 적은 탓이다.
지난달 강 전 의원이 케이블방송 tvN의 '화성인 바이러스'에 고소집착남으로 출연해 "24시간 고소만 생각하며, 1일 1고소를 목표로 한다"고 천연덕스럽게 얘기하는 걸 보고 정치인으로는 별 가망이 없으니 연예인으로 나서려는 걸까 생각했으나 반전이 있었다. 그 후 각종 신문과 종합편성채널의 와이드 인터뷰 단골손님으로 초대되며 그의 말마따나 좋은 이미지든 나쁜 이미지든 인지도를 드높였다. 덩달아 성희롱에 관한 그의 해명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주기까지 했다. '부음만 아니라면 정치인은 내용과 상관없이 언론에 많이 나올수록 좋다'는 속설이 과연 맞는 말이었다.
그는 개그맨 최효종 고소를 통해 자신에게 적용된 아나운서 집단모욕죄가 과연 성립하느냐는 논의를 이끌어내는 등 늘 잡음이 큰 건을 골랐다. 언론이 주목하도록 하는 영리한 전략이었다. 최근 트위터에 '인생 사십 넘게 살아보니 결국 제일 중요한 건 부모 잘 만나는 것. 정치 X나게 해봐야 부모 잘만난 박그네 못조차가 ㅋㅋ'라고 격한 심정을 토로했다가 다음날 기자회견을 자청해 사과한 해프닝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적절한 표현으로 논란을 일으킨 점은 사과하지만 내용은 진심이었다"는 해명이 보도되면서 그는 또 한번 '개천의 용' 이미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명함에 '포기를 모르는 남자, 화성인, 찌질이, 극우보수의 아이콘, 예능 늦둥이, 모두까기 인형, 내가 제일 고소해' 등 무려 15개의 별칭을 새긴 그의 황당함에는 철저한 계산과 전략이 깔려있었다. 그는 이슈를 만드는 데 탁월했고 언론은 그저 받아 썼다. 이번 사건은 강용석의 패배가 아니라 언론의 패배다.
채지은 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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