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전례 없는 공개 재검으로 일단락된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주신(27)씨의 병역기피 의혹은 무분별한 폭로전에 따른 사회적 혼란, 마녀사냥식 인신공격의 폐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사적 비밀인 의료기록을 여과 없이 들춰내며 의혹을 제기한 강용석 무소속 의원의 폭로전으로 인해 국민이 혼란에 빠진 것은 물론, 대학병원과 병무청 등 사회적 자산을 의혹 해소에 낭비했다는 지적이다.
공군 장교 출신인 강 의원은 주신씨가 지난해 공군으로 입대했다가 '대퇴부 말초신경 손상'으로 귀가 조치된 뒤 4급 공익판정을 받았다는 의혹을 한 언론에서 보도한 직후인 1월8일 자신의 블로그에서 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후 복부비만으로 보이는 주신씨의 MRI 사진을 공개하고 "키 173㎝, 몸무게 63㎏인 주신씨 체형이 아니다"며 MRI 필름 바꿔치기를 주장했다. 병무청은 "CT를 찍어 주신씨가 제출한 MRI와 비교하므로 바꿔치기는 불가능하다"고 해명했지만 강 의원은 오히려 공개 재검을 요구했다. 주신씨의 몸무게도 80.1㎏으로 확인돼 애초에 주장의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결국 주신씨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MRI를 재촬영하는 '공개 재검'을 거쳐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정치인들이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의도로 남발하는 '묻지마 폭로'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환자에게 쓰여야 할 의료인력과 장비마저 소모한 셈이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공직자에 대한 의혹은 마땅히 제기할 수 있고 검증 받아야 하나 이번 사건처럼 대상이 그 가족이고, 출처도 밝히지 않은 MRI 등 관련 신상 정보까지 털어내는 것은 명백한 사생활 침해"라고 지적했다.
강 의원의 주장에 동조한 의사들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한석주 세브란스병원 소아외과 교수가 감사원 홈페이지에 "강 의원 주장이 사실이라고 확신한다"는 글을 올린 것이 논란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당시 알았던 주신씨의 키와 몸무게가 22일 세브란스병원이 계측한 결과(176㎝, 80.1㎏)와 달랐다"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기초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았고, 다양한 체형에 대한 가능성을 배제한 채 섣불리 단정적인 의견을 밝힘으로써 혼란을 부추긴 것이다.
네티즌들은 "MRI만 보고 상당한 비만체질 운운한 의사들은 결국 강 의원에게 놀아난 꼴이다. 자기 반성해야 한다.", "강 의원에게 개인정보를 누출한 자를 밝혀내고 함께 법적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는 등 비판적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언론도 확대보도에 한몫을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2일 일부 언론은 주신씨에게 진단서를 발급한 혜민병원 의사 김모씨마저 MRI 사진과 주신씨 신체의 일치여부에 의구심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김씨는 본보 기자에게 "말한 내용과 전혀 다른 내용"이라고 밝혔다.
이번 기회에 무차별적 폭로를 막기 위해 면책특권을 누리는 현역 정치인들에 제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소위 '나경원법' '정봉주법' 등 정치권이 추진하고 있는 법안을 속히 제도화해야 한다"며 "상대를 비방할 목적으로 하는 폭로를 제재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주민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변호사는 "강 의원의 경우 건전한 비판을 위한 의혹 제기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흠집내기를 통해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측면이 강했다"며 "이번 사태는 정치권의 무분별한 폭로 행태를 바꾸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채희선기자 hsch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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