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가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면, 가장 고귀한 의료서비스를 펴는 단체는 이들일 것이다. 돈이 없어서, 의사가 없어서 죽음의 위기에 처한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성역을 두지 않고 달려간다. ‘국경없는 의사회’(MSF)다.
1971년 프랑스에서 의사와 기자들이 만든 이 단체가 22일 우리나라에 사무소를 열었다. 아르헨티나, 호주, 오스트리아 등 26개국에 사무소를 뒀고 한국사무소는 27번째다. 국제의료 비정부기구(NGO)인 이 단체는 현재 봉사자 3,000여명이 세계 60여개국에서 구호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국경없는 의료’를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한국사무소를 맡게 된 엠마누엘 고에(54) 사무총장은 이날 서울 소공동 프라자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긴급하고 큰 위기상황 뿐 아니라 간과되거나 잊혀진 곳도 보살필 것”이라며 “그곳이 어디든 도움이 절실한 이들의 목소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한국은 많은 잠재력이 있는 나라이며, 한국의 의료 전문인력들과도 협력해 구호활동을 펴고 싶다”고 덧붙였다.
국경없는 의사회가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현장 구호에 파견된 한국인은 22명이다. 올해는 의사 3명과 사무직원 1명이 콩고, 짐바브웨 등에서 활동 중이다.
고에 사무총장은 “국경없는 의사회가 찾는 인재는 의료인 뿐만이 아니다. 의사, 간호사와 더불어 심리상담사, 약사 등 준의료인과 구호물품담당 등 다양한 분야의 인력이 필요하다”며 여러 분야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의 참여를 기대했다.
그 역시 의료인 출신이 아니다. 프랑스인인 그는 파리 인근의 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평범한 교사이자 커뮤니케이션 회사의 대표였다. 그러던 그의 인생을 바꾼 건 1998년 12월 불가리아로 떠난 단기 현장구호활동이었다. “건강체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봉사를 하면서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게다가 내가 누군가를 돕는 삶을 살 수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무척 좋았어요.”
불가리아를 다녀온 뒤 한달 만에 그는 또다시 아프리카의 브룬디로 1년 간 영양실조에 걸린 이들에게 식품을 전하는 구호활동을 다녀왔고, 이후부터는 아예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의 현장활동가로 세계 각국을 돌아다녔다.
고에 사무총장은 “한국이 가진 뛰어난 전문 인력과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동참한다면 구호활동의 영향력은 훨씬 커질 것”이라며 “소규모 자원봉사를 넘어 한국사무소 개소를 계기로 기부와 현장활동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 “국경없는 의사회로 들어오는 기금 중 90%이상은 일반 대중에게서 나온다. 이 기금이야 말로 우리의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힘”이라며 시민들과 기업의 후원 참여를 부탁하기도 했다.
한국사무소는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둥지를 텄다. 고에 사무총장과 한국인 직원 5명이 일을 할 예정이다. 국경없는 의사회 한국 사무소는 국내에 진출한 NGO 중 유일하게 보건복지부 산하 기구로 승인을 받아 의료 지원 자격을 획득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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