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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목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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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목격자

입력
2012.02.2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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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휘어지는 도로, 달아난 차는 뒤가 없고 사내는 김샌 음료처럼 흘렀다 마지막 탄산이 터지고 곧 증발할 사내의 소금기가 마지막 찐득한 주문을 오자 그의 곳곳에서 새로운 다리가 생겨났다

오늘은 일하기가 싫다

깨진 머리는 소소한 기억이 뭉쳐 되게 짰다 마지막 장면을 망망히 담던 눈도 전에 없이 튀어나왔다 오징어회가 입천장에 불듯 염치없이 도로가 편안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흡반이 늘어났다

생 처음, 게으르게 그는 누워 있고 차들은 한 대 두 대 그를 비켜 갔고 바다는 느긋하게 고래를 담고 곰치를 담고 청새치를 담고 오징어를 담고 불이 밝았다 불빛을 쫓는 사내의 다리가 질척일 때, 연골과 두골에 쌩, 바큇자국이 나고 오징어 몸통처럼 쌔앵, 가늘게 찢어지는 그의 생

빛을 따르는 오징어가 그물에 잡히듯 묵호에서 도시로 밀려와 낙엽과 꽁초와 환경을 담던, 아스팔트에 구워져 동해 바다의 불빛처럼 줄지어 달려드는 어선에 찢기고 구워져 일차선 마요네즈에 찍힌

새벽의 미화원을 본

사람을 찾습니다

사양하겠습니다. 제 잘못도 아닌데 왜 말해야 하죠? 사태에 대해서 보고 들은 바를 정확히 증언해 달라시는데, 피곤합니다. 이런 심정으로 많은 일들에 대해 입을 다뭅니다. 환경 미화원의 산재사망률은 일반 직업의 10배이고 대부분이 교통사고라는 거 모르는 사람이 있어? 이런 일이야 숱하게 보았던 식상한 진실이라고 우리는 중얼거리죠. 시인은 그런 우리를 오징어마냥 눌리고 찢겨진 어느 삶의 전장으로 다시 소환합니다. 시인의 첫 시집은 <소년 파르티잔 행동지침> 이었는데 두 번째 시집은 <백년동안의 세계대전> 이라네요. 무시무시한 전장이라도 달려가서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말하겠어! 이 시인에게는 목격의 열정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느껴집니다. 그는 모든 종류의 맹목과 전쟁을 벌이고 있어요. 좋아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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