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더 크면 노모와 고향에 내려가 남을 위한 봉사를 하며 사는 게 꿈이었는데…."
구두닦이 생활을 하면서도 12년간 꾸준히 기부를 실천해왔던 기부천사 이창식(55)씨가 20일 돌연 세상을 떠나 주변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주택가 도로변 한 평도 안 되는 구둣방에서 30년을 일해왔던 이씨의 한 달 수입은 100만원 남짓. 아흔이 넘는 노모와 대학 입학을 앞둔 딸을 부양하며 살기에도 빠듯한 살림이었지만 그는 2001년 1월부터 매월 꼬박꼬박 자신의 수입의 1%를 떼 아름다운재단 등 복지단체에 기부해왔다.
그의 구둣방에는 돼지저금통처럼 생긴 기부함이 항상 놓여있었다. 기부 전도사였던 이씨때문에 2년 전부터 기부에 동참했다는 이웃주민 이용우(53)씨는 "창식이 형님은 '기부를 하면 행복하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했고 이에 영향을 받아 저도 남과 함께 하는 기쁨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기부천사인 이씨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강원 영월군에서 가난한 농사꾼 아들로 태어난 그는 30여년 전인 중학교 때 상경, 얼마 뒤 친구의 권유로 구둣방을 시작했다. 서른 일곱에 늦장가를 들었지만 3년 만에 헤어졌다. 삶을 비관한 이씨는 딸을 홀어머니에게 맡긴 채 매일 술로 지새기도 했다. 하루에 소주 다섯 병을 들이붓기 일쑤였다.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 신세를 진 것도 여러 번.
그러던 이씨가 생각을 바꿔먹은 것은 몸도 잘 가누지 못하는 지체 장애인이 리어카를 끌면서 장사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서였다고 한다. 그 뒤 이씨는 술을 끊고 다시 구두닦이 일을 시작했고 2001년부터 어머니의 권유로 기부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재단 창립때부터 매달 1만원씩 기부하던 것이 어느새 정기후원계좌만 5개가 됐다. 기부와 함께 삶의 변화를 경험한 그는 "자신을 일으켜 세운 것은 '나눔'과 '가족'이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는 "나눔이란 가진 것 없이도 부자로 살 수 있는 것"이란 아름다운 말을 남겼다. 이 말은 아름다운재단 홍보 포스터에 쓰이기도 했다.
아름다운재단 관계자는 "어려운 형편에도 꾸준히 기부를 해오신 재단의 상징적인 분"이라며 "지난해 10월 딸과 함께 재단 행사에 나올 때만 해도 건강했는데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씨는 20일 새벽 돌연 집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오후 숨졌다. 사인은 지병인 폐렴으로 인한 패혈증 쇼크사. 도로변 구둣방에서 매일 먼지와 구두수선용 화학제에 노출되다 보니 폐렴이 끊이지 않았던 게 결국 큰 화가 됐다. 1년 전 완치 판정도 받고 폐렴약도 끊었는데 결국 쓰러지고 만 것이다. 이씨의 이웃 이재경(63)씨는 "강원 정선에 땅을 샀다고 좋아하며 다음에 어머니 모시고 내려갈 거라고 얘기했는데 얼마 전 사기로 밝혀지면서 집에서 며칠씩 술만 마시며 괴로워하더니 그때 몸을 상한 것 같다"고 전했다.
21일 건국대병원에 차려진 이씨의 빈소를 지키던 딸 은혜(19)양은 "대학 입학식에 아버지와 손을 잡고 들어갈 생각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빈소에는 그를 아끼는 이웃과 재단 관계자뿐 아니라 아름다운재단 창립에 기여했던 박원순 서울시장도 찾았다.
박철현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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