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당선시켰던 유명한 선거구호 'It's the economy, stupid'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문제는 항상 경제였다.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 게이지'를 상승시키는 요인에는 측근 비리나 회전문 인사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으뜸은 역시 민생경제 와해다.
경제만 괜찮았다면 국민들도 MB정부에 대해 너그러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경제대통령이라고 해서 뽑았는데 경제가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는 배신감 속에 1년 남은 MB정부의 신뢰는 곤두박질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나라 밖을 탓하고 싶을 것이다. 불가항력적인 세계경제위기만 아니었다면 지금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이다. 사실 MB정부 4년 동안 경제위기가 없었던 기간은 6개월뿐이다. MB정부가 출범한 것이 2008년 2월 말이고, 리먼 사태가 터진 게 그 해 9월 중순, 글로벌 금융위기가 끝나자마자 유럽 재정위기가 시작됐으니 사실 현 정부는 뭘 해 보기도 전에 초대형 태풍을, 그것도 연거푸 맞은 셈이다.
하지만 해외악재로만 화살을 돌리는 건 떳떳하지 못하다. 두 차례 글로벌 위기가 없었다면 과연 경제는 좋아졌을는지. 아니라고 본다. 현 경제난을 양극화와 일자리 부족으로 규정한다면, 그 씨앗은 이미 MB정부 시작부터 싹트고 있었다. 바로 '747'공약이다.
이 숫자조합을 만들어 낸 사람들은 꼭 7% 성장을 달성하겠다는 뜻은 아니었으며 일종의 목표, 혹은 희망구호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수치 자체가 아니라 그 밑에 흐르는 MB정부의 경제철학, 즉 성장우선주의가 사단이었다. 무리하게 고환율을 밀고간 것, 제때 금리를 못 올린 것 모두 성장주의의 산물들이다. 만약 747이 핵심 공약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성장에 몰두할 필요가 없었다면 관료들은 경제를 훨씬 탄력적으로 운용했을 것이다.
성장이 멈추면 양극화는 심화되고 일자리는 사라진다. 하지만 성장률을 높인다고 빈부차 실업난이 저절로 풀리진 않는다. 더구나 고환율 같은 정책들은 수출 대기업들에 혜택을 주는 것이어서, 중소ㆍ내수기업들은 성장주의의 축복을 골고루 받을 수 없었다.
국내 2위 현대차그룹의 고용창출규모는 10위권 밖의 CJ와 신세계보다 떨어진다. 현대차는 자동화에 의존하는 수출 제조업체이고 CJㆍ신세계는 사람에 의지하는 내수 서비스기업이어서다. 이건 '고용 없는 성장시대'의 어쩔 수 없는 단면이다. 두 차례 글로벌 위기가 아니었더라도, 수출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들은 양극화 해소와 고용창출에 애초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말로 이걸 몰랐단 말인지.
황당한 건 그 다음부터였다. 정부가 대기업에 상생을 외면한다고 화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가 고환율-저금리 환경을 만들어줘 돈을 벌었는데 과실을 독식한다'는 논리였지만, 실상은 스스로의 정책 실패를 대기업에게 화풀이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재벌의 독점욕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데, 이게 양극화의 원인이라면 정권 초부터 엄하게 다스렸어야지, 한껏 밀어주는 정책을 쓰다가 맘대로 되지 않으니까 몰아세우는 격이었다.
이상이 747로 시작해 반재벌로 끝나고 있는 MB노믹스의 4년 스토리다. 헛심만 쓰다가 돌고 돌아 제자리로 왔다. 정부도 기업도 국민도 모두 피로만 누적됐다. 희망구호 정도로 시작된 공약 하나가 얼마나 경제를 소모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생생한 경험이다.
'팬시'하다 싶으면 닥치는 대로 약속을 쏟아 내는 각 정당들은 공약의 무거움을 알았으면 한다. 적어도 MB정부처럼 되지 않으려면.
이성철 산업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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