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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기업 실패 연구/ (하) 혁신 잃은 혁신기업: 닌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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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기업 실패 연구/ (하) 혁신 잃은 혁신기업: 닌텐도

입력
2012.02.2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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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폰 공세 맞설 '깜짝 제품' 못 내놓고 허우적

1980년대 가정용 게임기(콘솔) 분야의 선두 주자는 단연 미국의 아타리였다. 연간 20억달러의 이익을 올린 아타리가 하루 아침에 주저앉은 것은 1982년 나온 'E.T.'때문. 아타리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동명 영화가 크게 히트하자 연말 특수를 겨냥해 거액을 주고 게임판권을 따냈다. 개발 기간은 단 5주. 하지만 서둘러 만든 졸작을 시장이 철저히 외면하면서 아타리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업계에서는 이를 '아타리 쇼크'로 부른다.

세계적 혁신기업으로 꼽혔던 일본 콘솔게임업체 닌텐도에도 아타리 쇼크가 엄습하고 있다. 닌텐도에게 아타리의 'E.T.'같은 존재는 바로 지난해 2월에 나온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 3DS'. 기존 휴대용 게임기인 '닌텐도DS'에 입체영상(3D) 기능을 추가한 이 제품은 시장의 냉정한 평가를 받았다. 이관민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장은 "닌텐도가 판단을 잘못했다"며 "입체감이 떨어지는 조그만 휴대기기에 3D를 위해 과도한 투자를 했다"고 꼬집었다.

출시 한 달 만에 판매량이 급감하자 닌텐도는 6개월 만에 서둘러 가격을 2만5,000엔에서 1만엔으로 절반 이상 떨어뜨렸다. 덕분에 막판 판매량이 늘어났지만 수렁에 빠진 닌텐도를 건져 올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08년 7조원의 흑자를 냈던 닌텐도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 회계연도에 9,400억원 적자가 추정되고 있다.

닌텐도는 이명박 대통령도"우리에게는 왜 이런 기업이 없냐"며 부러워했던 혁신의 아이콘. 그 추락에 대해 시장에서는 혁신제품 부재를 꼽고 있다. 혁신기업에 혁신이 사라졌으니,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물론 외부환경 영향도 있다. 움직이는 게임기나 다름없는 스마트폰 저변이 넓어지면서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가 급속 위축된 것. 닌텐도의 휴대용게임기는 2009년 세계 모바일 게임 시장의 70%를 장악했으나 지난해 36%로 떨어졌고, 대신 스마트폰이 58%를 차지했다.

가격도 스마트폰 게임이 훨씬 싸다. 국내 게임개발업체 개발팀장 A씨는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은 한 개당 3만~4만원인 반면 스마트폰 게임은 비싸 봐야 5,000원을 넘지 않는다"며 "가격 경쟁력에서도 밀린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스마트폰 공세에 밀린다는 것 자체가 닌텐도의 혁신 모티브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닌텐도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때, 동작으로 진행하는 게임기를 내놓는 등 사람들의 허를 찌르는 기발함으로 똘똘 뭉쳤던 기업. 하지만 어느 순간 혁신 DNA가 사라져 더 이상 기발한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병호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닌텐도의 혁신적 경쟁력이었던 동작인식 게임기'위'는 경쟁업체인 MS와 소니가 위의 단점을 개선해 각각 내놓은 '키넥트'와 '무브' 때문에 빛이 바랬다"며 "휴대용 게임 시장도 스마트폰 위주로 재편됐는데 닌텐도는 이를 소홀히 한 점이 패인"이라고 역설했다.

이관민 교수도 "닌텐도는 기기를 이용해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창의력과 혁신이 빛났는데 지금은 다른 글로벌 기업들도 인간의 오감을 접목한 기술에 투자를 많이 하기 때문에 경쟁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닌텐도는 요즘 뒤늦게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차세대 게임기 '위U'를 연말 출시할 예정이고, 인터넷으로 게임을 내려 받는 '닌텐도 네트워크' 서비스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닌텐도가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 도쿄이치요시인베스트매니지먼트의 아키노 미츠시게 펀드매니저는 "닌텐도 게임기의 성장시대는 막을 내렸다"며 "새로운 시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대규모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 '갈라파고스 성향' 탓 세계 시장서 고립

세계를 지배했던 일본 전자업체들이 실패한 배경엔 '갈라파고스'성향도 한 몫 하고 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탓에 독자 생태계를 형성한 남태평양 갈라파고스 군도처럼, 일본 업체들도 세계시장에서 고립을 자초하다 큰 흐름에서 뒤쳐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휴대폰이 대표적이다. NTT도코모, 소프트뱅크 등 일본 이동통신 업체들은 개인휴대통신(PHS)처럼 일본에서만 통용되던 방식을 고수했고, 그러다 보니 휴대폰 업체들은 일본 기준에만 몰두해 결국 세계적 스마트폰 물결을 놓치고 말았다. 삼성전자 애플 등이 호령하는 전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일본 업체들은 현재 '톱10'에 명함조차 못 내밀고 있다.

일본은 1994년 독자적인 컴퓨터 운용체계(OS) 트론을 개발해 이를 세계 표준으로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도스(DOS), 윈도 등을 만든 마이크로소프트(MS)에 밀렸고, 결국 설 땅 자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자기 기술을 과신한 나머지 세계적 흐름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일본의 표준을 세계의 표준을 만들려고 했고, 그것이 실패하자 글로벌 시장 자체에서 도태되고 만 것이다.

또 일본은 1990년대 NHK 등이 중심이 돼 아날로그 방식의 고화질 방송인 하이비전을 국제표준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지만, 미국 등에서 디지털화가 진행되는 바람에 세계시장의 주도권을 뺏겼다. 인간의 두뇌와 같은 능력을 가진 컴퓨터 개발을 목표로 한 제5세대 컴퓨터도 1982년부터 일본 정부 주도로 10년간 개발했지만 상품화된 것은 거의 없어 실패사례로 꼽힌다.

소니의 비디오전쟁 패배는 일본 전자업계의 뼈아픈 기록으로 남아있다. 예전 비디오카세트레코더(VCR)시장 경쟁에서 소니의 베타방식은 JVC가 주도했던 VHS방식보다 기술적으로 뛰어났지만 글로벌 업체들이 VHS 방식을 지지하면서 세계 표준에서 밀려났다. 이후 소니는 디지털 음원 저장을 위한 미니디스크(MD)와 독자 메모리카드 등을 고집스럽게 내놨지만 세계 시장에서 배척당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본 기업들은 90년대부터 급속하게 진행된 디지털화와 개방화, 소프트화의 흐름에 뒤쳐졌다"며 "경쟁사들과 달리 원천기술 연구에만 매달려 상품화 되지 않는 기술을 누적시키는 바람에 오늘날 위기를 불렀다"고 지적했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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