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정치권을 뒤흔들었던 2008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겨우 빙산의 일각만, 그것도 흐릿하게 드러내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검찰은 "핵심 관련자들이 부인으로 일관하는 등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다"고 강변했지만, 수사 과정을 되짚어 볼 때 수사 의지가 의심스런 대목이 적지 않아 '정권 눈치보기 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검찰 수사로 드러난 박희태 국회의장과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 등 '돈 봉투 사건 핵심 3인방'의 범죄사실은 "2008년 7월 초 한나라당 대표 경선 직전 고승덕 의원한테 300만원이 든 돈 봉투를 제공했다"는 것, 고작 이게 전부다. 박 의장 측이 오로지 고 의원 1명에게만 돈 봉투를 건넸을 리는 만무하다는 점에서 돈 봉투 살포 범위 및 액수가 이 사건의 핵심 줄기인데도, 검찰은 이 부분을 전혀 건드리지 못했다. 박 의장 등 '윗선'에 대한 사법처리가 이뤄졌지만 수사가 '횡(橫)적으로' 전혀 뻗어나가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종(縱)적인' 수사가 제대로 이뤄진 것도 아니다. 검찰은 전당대회 당시 박 의장 캠프 상황실장이었던 김 전 수석이 돈 봉투 전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고 볼 만한 정황을 다수 포착했다. 그러나 김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커녕 자택 압수수색조차 하지 않았다. 때문에 검찰은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시종일관 발뺌한 김 전 수석을 압박할 무기를 확보하지 못했다. 유사한 사건에서 "일단 구속이 돼야 심리적으로 무너지고 입을 열기 시작한다"고 해 온 검찰의 태도와는 사뭇 달랐다.
급기야 검찰은 박 의장에 대해 소환 조사가 아닌 국회의장 공관 방문 조사를 택함으로써 수사 의지와 강도의 미약함을 스스로 드러내고 말았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만약 김 전 수석을 구속할 경우, 박 의장에 대해서도 영장을 청구해야 하는 상황이 되므로 부담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의심 가는 정황이 있었으나 신병처리 등 처벌 수위는 수사 결과 증거법칙에 따라 인정되는 범죄 혐의에 상응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 의장 측이 해외순방 도중 고 의원에게서 300만원을 돌려받았던 자신의 비서 출신 고명진씨와 차명폰으로 수 차례 통화하면서 사건 은폐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해명은 설득력이 낮아 보인다. 또 구의원 5명에게 2,000만원을 주면서 50만원씩 살포를 지시한 안병용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이 구속기소된 것과 비교할 때 형평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검찰은 이 2,000만원의 출처도 명확하게 밝히지 못했다.
박 의장 측이 급히 마련한 의심스런 자금 1억9,000만원의 사용처도 사실상 미궁으로 남았다. 전당대회 직전 하나은행에서 개설한 마이너스 통장으로 1억5,000만원, 라미드그룹에서 변호사 수임료 명목으로 받은 수표를 현금화한 4,000만원 중에서 용처가 드러난 것은 하나은행 띠지로 묶여 고 의원에게 전달된 300만원뿐이다. 정황상 이 돈이 다른 의원들에게도 뿌려졌을 가능성이 높지만, 검찰은 "전당대회 당시 이벤트 비용으로 지출했다"는 박 의장 측의 해명만 듣고 수사를 끝냈다.
이밖에 조정만 비서관이 한 방위산업체에서 1억여원을 받은 사실이 수사과정에서 포착됐는데도 "이번 사건의 본류와는 관계 없다"며 수사를 진행하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짙은 만큼 차후 별건으로라도 수사를 진행하는 게 마땅해 보이지만 검찰은 "(한상대 총장의) '스마트 수사' 방침에 따라 신속히 종결하자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밝혔다. 국민적 관심을 모은 사건인데도 "더 이상 확대하지 않고 수사를 어느 정도 선에서 종결하려 한 듯한 인상이 느껴진다"는 비판적 평가가 검찰 안팎에서 나오는 이유다.
다만 총선을 앞둔 현 시점에서 검찰이 정치적 균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한계를 감안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검찰은 수사 중반 "민주당 전당대회 때도 돈 봉투가 오가는 모습이 현장 CCTV에 찍혔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민주당을 향해서도 곧바로 칼을 빼들었다. 그러나 돈 봉투가 아니라 출판기념회 초대장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이틀 만에 수사를 무혐의로 종결했다. 이에 대해 "아닐 땐 신속히 매듭짓는 것도 용기"라는 안팎의 평가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검찰은 '헛발질'을 한 셈이라 체면을 구겼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 쪽으로만 강공 드라이브를 걸기에는 검찰로서도 부담이었을 법하다는 것이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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