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대 군비 경쟁을 주도했던 미국과 러시아가 국방 예산을 놓고 엇갈린 길을 가고 있다. 미국은 국방비 감축 계획에 따라 전투기 구입 등을 연기한다는 입장인 반면 러시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를 두 배 가까이 늘린다는 계획이다.
내달 4일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국방력 강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놓았다고 AFP통신이 러시아 관영 일간 로시스카야 가제타를 인용해 전했다. 푸틴 총리는 20일 신문기고에서 “러시아군의 현대화를 위해 10년간 23조루블(약 7,68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400기를 확보하고 핵잠수함 8대 및 잠수함 20대, 전투기 600대 추가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푸틴은 기고문에서“새로운 지역 전쟁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누구에게도 약점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국방력 강화의 이유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미사일방어(MD) 구축을 들었다. 그는 “러시아는 어떤 상황에서도 전략적 억지 능력을 포기할 수 없다”며 “미국과 NATO에 맞서 단호한 조치가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계획이 현실화하면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3%였던 국방비가 5~6% 수준으로 늘어난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러시아의 군사 전문가는 “계획이 실현될지는 회의적”이라며 “선거 전에 나온 약속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FT에 말했다.
러시아와 달리 미 국방부는 재정적자 삭감 압력 때문에 전투기와 잠수함 구매 등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무기 구매와 건설 프로젝트를 늦출 예정이다. 미국의 2013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F-35 전투기 179대의 구매를 2017년 9월까지 미뤄 151억달러의 예산을 절약하고 핵 잠수함 개발도 미뤄 43억달러를 줄일 계획이다. 국방부는 이 조치로 5년간 380억달러를 절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의 내년도 국방예산은 전년보다 60억달러가 감소한 5,250억달러로, 미국의 국방예산이 줄어드는 것은 1998년 이후 처음이다. 미국은 올해를 시작으로 5년간 국방비 2,590억달러를 줄이고 10년에 걸쳐 4,870억달러를 절감한다는 계획이다.
미국과 반대로 러시아가 국방력을 강화한다 해도 양국의 군사력 격차가 쉽게 줄어들지는 않을 전망이다. 미의회도서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 국방 예산은 약 560억 달러로 미국의 10분의 1수준이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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