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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충무로 '脫역사 사극'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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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충무로 '脫역사 사극' 전성시대

입력
2012.02.2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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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개봉 목표인 충무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여러 집단의 얼음 쟁탈전을 그려낸다. 얼음이 뭐 대수냐 싶겠지만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 금보다 귀한 얼음이라는 설정으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 영화는 충무로에서 조선시대판 '오션스 일레븐'으로 불린다.

■3월 방송 예정인 SBS 드라마 '대풍수'는 조선 건국을 다루지만 이전의 사극과는 결이 다르다. 고려 말 한 풍수가가 이성계를 내세워 새 나라를 세운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역사적 사실은 희미한 윤곽만 남기고 허구로 시청자들을 유혹하려는 일종의 팩션(Fact와 Fiction의 합성어로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이야기)이다.

여의도와 충무로에 사극 바람이 불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의 단초로만 활용하는 팩션 사극, 시대적 배경만 빌려온 픽션 사극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지상파TV에서 올해 방송될 예정인 탈역사 사극은 4편 가량이며, 충무로에선 역사와 거리를 둔 10편 내외의 퓨전 사극이 제작 중이다. 바야흐로 사극 아닌 사극의 전성시대다.

최근 충무로 사극들은 앞에 '조선판'이란 수식이 붙기 일쑤다. 이병헌의 첫 사극 출연으로 눈길을 끈 '나는 조선의 왕이다'(가제)는 광해군과 그의 얼굴을 닮은 거지의 사연을 그린 조선판 '왕자와 거지'다. 시나리오 작업 중인 '사어'(상어의 옛말)는 조선판 '조스'를 표방한다. 외피는 사극이지만 내용은 현대적 장르영화인 셈이다.

여의도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시청률 40%에 육박하고 있는 MBC '해를 품은 달'은 조선시대가 배경인 로맨틱 코미디라는 평이 따른다. 지난해 방송된 KBS '공주의 남자'는 수양대군의 장녀 세령과, 수양대군의 정적인 김종서 막내아들의 사랑을 그렸는데, 정사(正史)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역사적 설정만을 빌린 일종의 조선판 신파 멜로. 세종의 한글창제 과정을 그린 SBS '뿌리 깊은 나무'는 영화 '장미의 이름'의 전개와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탈역사 사극 열풍은 최근 히트한 드라마와 영화의 영향이 크다. 지난해 충무로는 조선판 '셜록 홈즈'로 포장한 '조선 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할리우드 영화 '아포칼립토' 표절 논란에 휩싸였던 '최종병기 활'로 짭짤한 재미를 봤다. '해를 품은 달'과 '뿌리깊은 나무'의 시청률 고공비행도 자극제로 작용하고 있다.

현대물의 장르적 속성을 비틀 수 있다는 장점도 탈역사 사극 붐을 부추긴다. 부모가 반대하는 재벌 2세와의 사랑 이야기 정도로는 대중의 눈물을 끌어내기 쉽지 않은 게 현실. 조선의 신분사회 등을 배경으로 한 왕자님, 공주님과의 금지된 사랑이 더욱 애절하게 대중의 감성을 파고 들기 유리하다. 이런 대중의 심리를 반영하듯 3월 방송될 SBS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는 3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21세기로 온 조선 왕세자의 사랑을 그린다.

이재영 KBS 책임프로듀서는 "이 관계 저 관계 다 설명해야 하는 현대극과 달리 사극은 멜로면 멜로, 원한이면 원한, 주제를 강렬하게 몰고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 투자배급사 NEW의 박준경 마케팅팀장은 "사극은 볼거리 면에서도 현대물과 아주 많이 달라 차별화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탈사극 열풍은 소재 겹치기로도 이어지고 있다. 거지와 위치를 바꾼 세종의 왕자 시절을 웃음기로 그리는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나는 조선의 왕이다'와 설정이 오버랩 된다. 올 여름 방송 목표인 사극 의학 드라마 '신의'와 '타임슬립 닥터 진'은 시대적 배경만 각각 고려와 조선으로 다를 뿐 모두 현대 의사가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명의로 활약한다는 내용을 다룬다. 한 영화사 대표는 "최근의 사극 붐은 영화 '추격자'의 상업적 성공 이후 스릴러가 우후죽순 나온 현상과 비슷하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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