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현실적으로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어떻겠냐고 말하기도 하죠. 그럴 땐 정말 속상해요."
우수를 하루 앞둔 18일 광주는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4도까지 떨어지는 등 늦겨울 추위가 한창이었다. 전날 내린 눈 탓에 바람도 매서웠다. "자율학습을 하다 외출 허락을 받고 나왔다"는 전남과학고 2학년 박승연(17ㆍ가명) 양의 목소리에도 수심이 가득했다.
길지 않은 생머리, 수줍음 가득한 미소. 영락없는 여고생의 모습이지만, 박양은 요즘 부쩍 혼자 속앓이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2학년에 진학하면서 진로를 결정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주변 어른들이 "집안 형편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자주하기 때문이다. 박양의 집안 형편으로는 대학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어 고민만 깊어지는 상황이다.
박양의 고향은 전남 여수. 외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어린 남동생 2명까지 다섯 식구가 고향에 있다. 박양의 아버지와 새 아버지 모두 가족을 책임질 자신이 없다며 집을 나갔다.
어머니가 새벽같이 식당에 나가 벌어오는 한 달 120만원이 가족 수입의 전부다. 그마저도 당뇨 때문에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할머니의 병원비, 임대주택 입주금 대출 이자를 빼면 손에 남는 돈은 몇 푼 안 된다.
그런 환경 때문에라도 박양은 지금까지 죽을 각오로 공부했다. 그것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중학교 때부터 그랬어요. 학원비가 25만원인데 1등을 하면 학원비 20만원을 돌려 받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학원도 다녔어요." 과학고 진학도 포기하려 했지만 재능을 아까워한 주변 선생님들의 격려가 이 길로 이끌었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가족들의 희생을 생각하면 가끔은 자신이 없어지기도 한단다. "어머니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인문계 학교로 진학하길 바랬어요. 그런데 여기(과학고)에 온다고 떼 쓴 것 같아요. 공부하느라 연습장 한 권 값 3,000원을 엄마한테 부탁하는 것조차 미안하죠."
박양의 꿈은 생명공학 박사. 카이스트에 조기 진학하거나 서울대에 입학해 과학기술원의 연구원이 되겠다는 목표도 있다. 진로도 8월이면 정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은 꿈을 접을까 고민하기도 한다. 웬만한 사립대학의 한 학기 등록금 500여만원을 구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다.
유순재 어린이재단 복지사업팀장은 "10년 넘게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을 봐 오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게 이 아이들이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이었는데 승연이는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박양은 지금도 되는 이유를 먼저 찾는다. 얼마 전에는 태권도 1단 자격증까지 땄다.
"체력이 좋아야 공부도 잘한다고 해서 학교 동아리에서 헬스도 하고 댄스 동아리에서 운동도 해요. 해를 보고 달리면 달이라도 품을 수 있다는 말도 있잖아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 일단 큰 꿈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할 겁니다." 후원 문의 어린이재단 전남지역본부 (061)753-5129~30.
광주=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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