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틀란타 출신의 타라 로버츠는 얼마 전 잡지회사에서 해고됐다. 이 참에 그는 전세계 여성들을 하나로 묶는 소통 창구를 만들고 싶다는 평소 구상에 따라 소셜네트워킹 사업에 뛰어들기로 맘 먹었다. 로버츠가 고심 끝에 창업의 전진기지로 점찍은 장소는 뜻밖에 칠레. "긴축과 희생을 요하는 미국 경제 시스템에서는 더 이상 기업가 정신을 찾기 어려웠다"는 게 칠레를 선택한 이유다.
계속된 경제 위기에 환멸을 느낀 선진국의 젊은 인재들이 중남미로 몰려들고 있다. 유럽연합(EU) 통계청이 이달 초 발표한 스페인의 청년실업률(25세 이하)은 48.7%. 두 명 중 한 명이 실업자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전체와 미국의 청년실업률도 각각 21.3%, 18%로 전체 실업률을 훨씬 웃돈다.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19일(현지시간) "탈출구가 없는 유럽과 미국의 청년층에게 칠레,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이 도전ㆍ기회의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로버츠는 '스타트업 칠레'라는 제휴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았다. 칠레 정부가 젊은 창업 지망생에게 돈을 대고 아이디어의 상품화를 적극 독려하는 제도다. 지금까지 30개국 200여명의 젊은이가 칠레를 찾았다. 이 프로그램의 브레나 로우리 대변인은 "칠레는 그동안 폐쇄적인 국가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며 "전세계 두뇌들의 다양한 경험이 칠레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창업뿐 아니라 직업 적성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중남미는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법률, 패션, 금융 등의 장ㆍ단기 인턴십프로그램이 구비돼 특기를 가진 구직자라면 어렵지 않게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스페인어에 능통한 영국인 토비 도니슨은 시계 제조회사 롤렉스의 아르헨티나 지사에서 일을 배우는 중이다. 그는 "개인이 원하는 맞춤식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점이 굳이 가까운 스페인을 놔두고 아르헨티나까지 올 결심을 한 이유"라고 말했다.
CSM은 석유산업과 농업 등에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느슨한 규제, 값싼 노동력 등이 더해지면서 중남미가 경제의 신천지로 각광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속 성장을 지속한 브라질은 지난해 영국을 제치고 세계 6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노동력의 무분별한 글로벌화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칠레 오토너머스대의 리카르도 이스라엘 교수는 "중남미는 몇몇 기업과 족벌에 이익이 집중된, 불평등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며 "노동시장의 문호를 개방한다고 해서 투자의 대가가 경제의 질적 성장을 담보할 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