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은행 영업점에 다니던 유모(38)씨는 재작년 희망퇴직을 했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두 자녀의 육아로 고심하던 중 은행 측이 괜찮은 퇴직 조건을 제시해 받아들였다. 유씨는 "당시 명퇴를 거부했어도 몇 년이나 더 일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은행 여직원이 마흔을 넘기면 퇴직 압박을 견디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외국계 B은행에서 근무하는 이모(40) 차장은 요즘 좌불안석이다. 은행이 외국계로 넘어간 이후 장기 근속 여직원에 대한 퇴직 압박이 거센 탓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은행을 박차고 나가기도 쉽지 않은 터. 이 차장은 "언제 그만둬야 할지 매년 저울질을 하면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마흔이면 한창 일할 나이지만 금융권 여직원들에겐 그리 만만한 나이가 아니다. 20,30대까지 촉망 받던 엘리트 여직원도 마흔을 넘기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다반사다. 금융권의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은 여전히 두텁다.
20일 금융위원회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의뢰해 작성한 '2011 금융인력 기초통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권에 종사하는 여성 인력 10명 중 8명 이상(82.3%)이 30대 이하였다. 40대 비중은 15.3%, 50대 이상은 2.5%에 그쳤다. 50세 넘어서까지 금융권에서 일하는 여성은 100명 중 2~3명 꼴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남성의 30대 이하 비중이 절반에 못 미치는 45.1%인 것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수치다. 이 조사에는 ▦은행 ▦증권 ▦보험 ▦자산운용 ▦선물 ▦상호저축은행 ▦여신전문 ▦신협 등 7개 주요 업종 금융회사 1,431개사 중 80%에 달하는 1,142개사가 참여했다.
이러다 보니 40대 이후 금융권 종사자의 남녀 균형은 급격히 무너진다. 20대는 여성 비중이 69.4%로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많고 30대에는 49.5%로 남성과 엇비슷한 비중을 보이다 40대에는 20.4%로 급감한다. 50대가 넘어서면 그 비중은 10명 중 1명 꼴(11.8%)로 더욱 낮아진다. 근무기간 별로도 남성은 10년 미만 근무자가 44.0%인 반면 여성은 65.0%나 됐다.
남녀 차이는 직무별 분포에서도 두드러진다. 대졸 이상 여성 인력 중 절반이 넘는 51.7%가 은행 창구 등 영업 부문에, 26.9%는 경영지원 등 후선 업무에 각각 배치됐다. 반면, 연금(0.2%) 자금조달(0.6%) 투자은행(0.9%) 자산관리(1.5%) 위험관리(1.7%) 등 전문성이 많이 요구되는 직무에서 일하는 비중은 미미했다.
보고서는 "금융업계 전반적으로 여성이 단순ㆍ보조 업무를 중심으로 고용돼 있음을 보여준다"며 "창구 영업의 경우 나이 많은 인력을 배치하기 쉽지 않은 데다, (여건 악화에 따른) 여성의 취업 포기도 늘면서 40대 이후 여성 비중이 급감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금융회사 직원 중 억대 연봉을 받는 이들은 11.7%, 5,000만원 이상은 59.4%에 달했다. 업종별로는 자산운용사의 5,000만원 이상 연봉자 비중(68.0%)이 가장 높았다. 같은 금융권에 종사해도 직무별 연봉 차이가 상당했다. 억대 연봉의 비중이 가장 높은 직무는 투자은행(IB) 부문으로 4명 중 1명 꼴(25.5%)이었고, 자산운용 부문(21.4%)이 뒤를 이었다. 특히 IB 부문 종사자는 근무기간 5년이 안 되는 이들 비중이 절반에 육박(48.4%)했음에도 불구하고 급여 수준은 최상위권이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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