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을 켜니)"메뉴를 고르세요"→(소고기를 넣고'스테이크'를 누르자)"요리시간을 선택하세요"→(타이머로 30분에 맞추니)"문을 닫아 주세요. 요리를 시작합니다."
만화 영화에서나 봤던 인공지능 로봇의 안내가 아닙니다. 대우일렉트로닉스(이하 대우일렉)에서 해외에 내놓은 '말하는 복합오븐(사진)'입니다. 수출 시장을 겨냥한 제품답게 프랑스어와 러시아어, 스페인어, 페르시아어까지 구사가 가능하죠.
이 회사는 해외 현지 소비자들을 위해 만든 이 맞춤형 제품으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는데요, 2010년 출시 이후 벌써 누적대수가 5만 여대를 넘었답니다. 대우일렉은 자동 메뉴에서 10여 가지의 멕시코 현지 요리가 가능한 '셰프멕시카노' 복합오븐 출시(2009년) 덕분에 현지 오븐 시장점유율에서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이 업체의 해외현지화 상품은 오븐만 있는 게 아니랍니다. 각 나라마다 특성을 살린 전자제품을 만들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중동지역에선 물이 귀한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외부인이나 아이들의 음식물 반입을 제한한 '자물쇠 냉장고'를 만들어 150만대의 누적판매를 기록하며 현지 히트상품반열에 올려 놓았습니다. 페루에선 이 나라의 전통 문양인 '나스카'를 디자인에 적용한 세탁기를 출시 덕분에 올 들어 60% 이상 판매가 늘었답니다.
언뜻 보면 그냥 '재미있는 아이디어 상품'정도로 보이지만, 대우일렉에겐 사실 절박한 상품들입니다.
대우일렉은 '탱크주의'로 유명한 옛 대우전자입니다. 대우그룹 해체 후 벌써 13년째 워크아웃 상태를 이어오고 있지요. 국내에선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틈새에서 설 땅이 비좁습니다. 해외가 유일한 판로인데, 워크아웃 상태이다 보니 광고 마케팅도 풍족하게 할 수 없는 형편이지요.
그러다 보니 돈 덜 들이면서도 현지에서 통할 수 있는 상품들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모두가 머리로 짜내고 발로 뛰면서 만들어낸 눈물 겨운 상품들"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상품들을 통해 대우일렉은 지난해 매출 1조6,854억원을 올렸습니다. 글로벌 경기침체 임에도 80% 이상을 해외에서 일궈냈죠. 워크아웃 기업으로는 드물게 4년(16분기) 연속 흑자행진도 이어오고 있습니다. 대우일렉의 분투에 박수를 보냅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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