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로 서울 방향 부천역(남부) 사거리에 ‘펄벅기념관’이란 낯선 표지판이 있다. 안내판을 따라 800m 정도 가면 아담한 2층짜리 건물과 만난다. 경기 부천시 소사구 심곡본동 566의 9 펄벅기념관(www.pearlsbuckhall.or.kr)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인권운동가인 벌 퍽이 1967년 세운 소사희망원 자리에 2000년 이휘호 여사의 ‘펄벅 여성상’수상을 계기로 2006년 설립된 기념관이다.
펄벅 여사는 소사 희망원이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아메라시아 아이들의 어머니를 사회에 복귀시키고, 그 아이들이 특별 교육과 직업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되기를 희망했다. 아메라시아 아이는 요즘 같으면 다문화 가정 자녀다. 그는 수백명의 아메라시아 아이들이 참석한 그 개원식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념관에는 여사의 머리핀과 가방 등 유품을 비롯해서 작품 활동으로 받은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장 등 다양한 물품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물 중 소사 희망원을 설립해 운영한 공로로 1968년에 받은 서울명예시민증에는 여사의 한국 이름인 ‘최진주’ 석 자가 또렷하게 인쇄되어 있다. 그의 대표작 3부작과 한국을 배경으로 한 는 여사와 인연이 깊은 고 장왕록, 고 장영희 교수의 번역본으로 전시하고 있다. 전시 작품에는 정신지체를 갖고 태어난 딸 캐롤의 양육기인 도 있다. 이 책이 출판되고서야 의 주인공 왕룽이 ‘첫째 딸이 말도 하지 못하고 제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슬퍼했다는 대목은 작가의 실제 삶에서 우러나온 문장으로 확인됐다.
펄벅 여사는 세 살 된 딸이 정신지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받아들이지 못하고 유명 의사를 찾아 다녔지만 허사였다. 딸의 인생뿐 아니라 자신의 미래에도 희망이 없어 보였지만 그는 딸을 남들과 조금 다른 인격체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삶도 새롭게 변화시킨다. 그가 1950년 ‘자라지 않는 아이’를 통해 캐롤을 당당히 세상에 드러내고서야 세상 사람들은 정신지체아를 키우는 부모를 이해하고 공감하기 시작했다. 펄벅 여사의 이 헌신 이면에는 중국과 미국이라는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지체아를 낳아 키우며 사회의 관습에 도전한 개인사가 담겨 있었던 셈이다.
2007년 12월부터 우리나라도 생애주기별 건강관리 차원에서 만 4개월부터 만 5세까지 6차에 걸쳐 영유아 건강검진을 무료로 시행하고 있다. 영유아 건강검진은 해당 시기에 중요한 건강문제를 찾아내기 위해 문진과 진찰을 기본으로 키, 체중, 머리 둘레를 측정하는 신체 계측과 영양, 수면, 안전과 같은 건강교육과 발달선별검사를 이용한 발달평가와 상담을 주내용으로 하고 있다.
도입 초기에는 건강검진에 혈액 검사가 없다는 오해와, 검진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수가가 낮다는 등의 이유로 정착에 애를 먹었으나, 검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이 확대되면서 혜택을 받는 영유아가 증가하고 있다. 또 이 검진으로 발달장애가 의심돼 전문의의 진단과 치료를 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0년 현재 OECD 국가 중 합계 출산율이 1.23명으로 최저임에도 여전히 영아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고 국내 입양은 제자리 걸음이다. 2011년 현재 혼인 중 다문화가정 비율이 10.8%로 집계되고, 6세 이하 다문화 가정 어린이 비율이 2.9%에 이르는데도 피부색에 따른 다문화가정 자녀에 대한 차별과 적대감은 여전하다. ‘자라지 않는’ 아이는 가족과 사회가 꾸준히 돌봐주면 사회 생활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성차별, 인종주의적 편견, 장애인과 동성애 혐오증에 감염된, ‘자라지 못한’ 어른이 너무 많아 사회의 통합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물감 놀이 재미에 푹 빠진 아이와 함께 펄벅기념관에 다녀올 생각이다. 아이가 피부색에는 살구색 말고도 여러 가지 색이 있으며, 피부색의 차이는 단지 멜라닌세포의 개수 차이에 지나지 않음을 일찍 깨달았으면 좋겠다.
황승식 인하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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