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리니언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리니언시

입력
2012.02.20 12:03
0 0

피의자 A와 B를 검거했는데 증거가 없다. 둘을 분리한 뒤 “자백하면 무죄로 추정해 주지만 침묵하다 들키면 징역 10년”이라고 각자에게 말한다. A와 B, 모두 상대가 어떻게 할지 알 수 없어 ‘합리적 증언’을 하고, 결국 둘 다 5년 징역형을 받게 된다. 증거를 없애온 범죄자 알 카포네(A)가 심복 부하(B)와 함께 검거돼 결국 감옥에 가게 됐던 상황을 설명하며 ‘죄수의 딜레마’이론이 생겼다. ‘리니언시(Leniency)’ 즉 ‘담합자진신고자 감면제’도 그렇다.

▦담합, 자진신고, 감면. 죄를 지었지만 고백했으니 처벌을 깎아 준다는 것이다. 최근 재벌계열 보험회사끼리 영업수단을 담합한 뒤, 자진신고 모양을 갖췄고, 그래서 14조 원의 부당이득(시민단체 주장)에 대한 과징금을 감면 받았다 한다. 보험업계는 약과고 매출액이 수십 조원인 전자제품과 주유소 등의 시장은 ‘담합-자진신고-감면’이 일반화돼 있다. 담합했다가 들키면 과징금으로 때우고, 그나마 자진 신고하면 반 이상 전액까지 감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규정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담합이 발각되면 매출액의 10% 이내에서 과징금을 물리고 있다(20조). 끼리끼리 담합해 10% 이상의 마진율을 책정해 놓았다면 발각되더라도 손해를 보지 않는 셈이다. 당국의 감독 기미가 보이면 신고하거나(전액 감면) 협조해 버리면(절반 감면) 또 그만이다. 만약 신고 및 협조 순번까지 담합해 놓았다면 걱정할 일이 없다. 몇 천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되더라도 이미 몇 조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뒤가 아닌가.

▦리니언시는 정부 감독기능의 한계를 극복하고 단기적으로 소비자의 손해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많은 선진국이 법제화 해놓고 있다. 장기적으로 ‘죄수의 딜레마’ 효과로 담합행위를 주저하게 만드는 이점도 있다. 하지만 대기업의 담합욕구를 부추겨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봉쇄하고, 최종적으로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부작용은 불가피하다. 우리처럼 후진적 기업문화 속에서 그나마 효과를 거두려면 ‘자진신고-감면’ 요건을 더 무섭게 규정해야 한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