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에 오른 비장애인을 보면 질투심이 타올라야 합니다. 그래야 실력을 키워 그들과 동등한 수준이 되려는 동기가 생기죠. 질투를 해야 과감한 도전도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오영준(37)씨는 최근 숭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청각장애인으로는 처음 받은 박사학위다. 오씨는 20일 한국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새로운 학문의 출발점에 섰다”고 했다. 스스로를 다잡는 말이다. “지금껏 이룬 것에 안주하지 않고 좋은 연구 성과를 위해 죽을 때까지 매진하겠다”는 다짐이다.
그러나 그가 선 곳이 개인적 출발점만은 아니다. 국내 첫 청각장애인 박사이기에 농아 후배들에겐 희망이다. 그도 알고 있다. “농아인 후배들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해 주류 사회에서 등용될 수 있도록 선배로서 도와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오씨는 한 살 때 사고로 청력을 잃었다. 난청으로 언어 장애까지 갖게 돼 수화나 필기를 통해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그러나 숭실대 컴퓨터학과에서 수화번역시스템 관련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분야를 연구해 이번에 박사가 됐다.
그가 동료 학생의 노트를 빌려 공부하는 식으로 힘겹게 써낸 박사 논문은 ‘장애인을 위한 다중 카메라 기반의 지능형 공간’. 가난한 장애인이 도우미 없이 이동 가능한 주거 환경을 만들기 위해 장애인 사용자의 시선, 각도, 위치 등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 장애인이 실내에서 물체와 충돌하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스마트 공간을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씨는 자기가 걸어온 험난한 길을 후배들이 답습하기는 원치 않는다고 했다. “농아 대학생들은 강의를 듣기 위해 수화 통역사와 노트 대필자를 구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국가가 세금으로 농아 대상 학습 서비스를 지원해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도 미국 국립농아기술대(NTID)나 일본 츠쿠바기술대처럼 수화로 가르치는 국립농아대 설립을 검토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오씨는 삼성전자 DMC연구소 경력사원 면접에 합격해 신체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입사 후 ‘복지 가전’을 연구해 장애인이 가전제품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게 첫 번째 목표다. 그 다음 목표는 ‘질투 받는 선배’가 되는 거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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