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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태평양은 넓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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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태평양은 넓지만

입력
2012.02.20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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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시진핑 부주석이 미국을 방문한 지난 주, 중국관영 글로벌 타임스의 인터뷰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인터뷰 상대는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 중국 방문 때 수행한 외교 원로 니콜라스 플랫이다. 파키스탄 대사 등을 거쳐 은퇴한 뒤 아시아협회(Asia Society) 회장을 지낸 중국 전문가다. 그는 두 나라 관계를 40년 함께 산 '성숙한 결혼'에 비유했다. 온갖 곡절과 풍상을 겪은 사이인 만큼, 어떤 갈등이 있더라도 서로 껴안고 사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이다. "권투시합에서도 꼭 껴안는 게 피차 가장 안전하다. 미ㆍ중은 클린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충고를 덧붙였다.

시진핑은 내년 3월 국가주석에 올라 2022년까지 중국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방미는 미국 조야에 자신을 알리고, 중국인들에게 국제적 지도자의 면모를 과시할 목적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4박5일 짧은 일정에도 프로농구(NBA) 경기를 관람하고, 27년 전 잠시 머문 아이오와 농촌을 다시 찾아 주민들과 회포를 나누는 감동을 연출했다.

그는 미국산 콩 60억 달러어치 구매를 선물로 내놓았다. 함께 방미한 경제인 500명은 여러 도시에서 무역투자 촉진행사를 갖고 271억 달러 수입계약을 했다. 미 상공회의소가 신문에 007 영화를 본 따'From China With Love'라고 환영 광고를 낸 것에 통 큰 씀씀이로 보답했다. 중국상품 홍수와 막대한 무역적자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감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물론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과 협력'관계가 갈림길에 선 것으로 평가되는 마당에 친근한 이미지를 심는 것이 주목적일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층과의 상견례와 교감이 역시 중요하다. 시진핑은 국무 국방 재무장관 등 오바마 정부 수뇌와 올브라이트 등 외교안보 원로를 두루 만났다.

오바마는 국가원수급 예우를 베풀고 이례적으로 공동성명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TV중계 연설에서 애써 미소를 감추고 단호한 표정으로 중국의 책임을 강조, 인권과 불공정 무역행태 개선 등을 거듭 촉구했다. 그렇게 공화당 대선 경쟁자들이 물고 늘어지는 쟁점에 강한 의지를 천명하는 곁에서 시진핑은 느긋한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다음 날, 시진핑은 미국이 아ㆍ태 지역 평화와 안정을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하는 것을 환영한다면서도, 중국과 지역국가들의 이익을 진심으로 존중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하이테크 기술수출 규제를 풀고, 미국 투자 중국기업 차별을 없애라고 요구했다. 티베트 독립반대 약속을 지킬 것도 촉구했다.

오바마와 시진핑은 첫 데이트에서 갈등을 노출했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미국 유권자와 중국 인민에게 국익을 지키는 모습을 과시하는 기회를 나눠 가졌다는 분석이 그럴듯하다. 2017년까지 맞상대할 지도자로서 인간적 신뢰를 쌓고 국내정치 입지를 다지는 걸 도운 셈이다. 그만큼 두 나라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사회적으로 깊이 얽혀있다.

이런 모습은 미국이 새삼'태평양 국가'를 선언, 군사력 전진배치로 중국을 견제하는 듯한 움직임과 어울리지 않는다. 남중국해 대만 한반도에 이르도록 전략적 불신이 커졌다는 관찰과도 어긋난다. 혼돈을 헤치고 실상을 바로 보려면"군사적 측면은 과장되기 마련"이라는 경고를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케네스 리버달은 재정 위기에 몰린 미국과 오바마 정부는 실제 중국과 군사적 대결을 추구할 형편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원칙과 이익을 존중하는 타협을 통한 경쟁과 협력이 순리라는 말이다.

시진핑은 워싱턴포스트 회견에서 미국의 군사적 구호를 경계하면서 "태평양은 미ㆍ중 모두 자리가 충분할 만큼 넓다"고 말했다. 동거든 결혼이든, 함께 껴안고 살 수 있다고 손을 내민 셈이다. 집안싸움에 여념 없는 우리는 얼마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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