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동차 업계에 '세브린스키 비상령'이 내려졌습니다.
알렉스 세브린스키(사진) 미국 메릴랜드대 교수가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을 상대로 집요한 특허 공세를 펴고 있기 때문인데요. 일본 도요타와 미국 포드사를 상대로 승리를 이끌어 냈던 그가 이번엔 현대ㆍ기아차를 다음 상대로 지목한 것입니다.
세브린스키 교수는 옛 소련 출신의 전기공학자로 1978년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1994년에 자동차가 가솔린 연료로 움직일 지, 전기 모터로 움직일 지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자동제어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는데, 최근 각광 받는 하이브리드 카의 필수 기술이라고 합니다.
세브린스키 교수가 도요타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한 건 2004년이었습니다. 도요타는 1997년 세계 최초로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를 내놓았고, 2003년 대량 생산을 위한 '프리우스2'를 출시한 하이브리드 분야 최강 업체이지요. 세브린스키 교수는 도요타가 자신의 기술을 무단 사용했다며 텍사스 주 지방 법원에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양측의 법정공방은 무려 6년이나 이어졌습니다. 세브린스키 교수는 2006년 지적재산권 개발 및 운영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까지 차려가며 도요타와 싸우기 시작했지요. 2009년 법원은 "도요타는 프리우스2, 하이랜더 하이브리드, 렉서스RX400H를 한 대 팔 때마다 각각 차 값의 0.48%, 0.32%, 0.26%(1대 당 약 98달러)를 보상하라"며 세브린스키 교수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도요타는 그에게 로열티를 주는 쪽으로 합의를 했고,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기술을 쓰고 있던 미국 포드사도 같이 합의하고 말았습니다. 미국 내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다"라는 반응이 쏟아져 나온 건 당연했습니다.
그런 세브린스키 교수가 이번엔 현대ㆍ기아차를 상대로 싸움을 걸었습니다. 그가 이끄는 파이스사는 16일(현지시간) "현대차 쏘나타 하이브리드와 기아차 K5(현지명 옵티마) 하이브리드가 특허 기술 3건을 동의 없이 썼다"며 볼티모어 연방법원에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그는 소장에서 "2004년부터 현대차 측과 여러 차례 접촉했지만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현대차가 이길 수도 있고, 진다면 로열티를 주는 쪽으로 합의가 될 겁니다. 피소됐다는 것 자체가 현대ㆍ기아차의 미국시장 내 영향력이 커졌다는 방증도 되겠지요. 하지만 결과와 관계 없이, 꼭 삼성전자와 애플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제 자동차 산업에서도 특허 전쟁은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된 것 같습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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