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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두번째 비평집 '잘 표현된 불행' 펴낸 황현산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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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두번째 비평집 '잘 표현된 불행' 펴낸 황현산 고려대 교수

입력
2012.02.1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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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안목, 유려한 문장으로 시 비평 분야에서 정평을 얻고 있는 황현산(67) 고려대 명예교수가 두 번째 비평집 <잘 표현된 불행> (문예중앙 발행)을 펴냈다. 첫 비평집 <말과 시간의 깊이> (2002) 발간 이후 꼭 10년 만이다. 총 4부, 70편의 글을 묶었는데 한 문예지 연재글을 모은 4부를 빼고 대개 청탁을 받아 쓴 54편 중 40편이 (환갑이었던) 2005년 이후 발표됐다. 황 교수가 나이 들수록 그의 비평에 귀 기울이는 이들이 늘어나는, 문단에서는 이례적인 현상이다. 시쳇말로 '완전소중 황현산'이다.

황 교수는 이번 책의 1부에 시론(詩論)에 해당하는 글을, 2부에는 한용운 김기림 이상 김수영 김춘수 등 작고 시인의 시 세계를 새로운 관점으로 조망한 글을 실었다. 3부는 시집 해설 모음인데, 고은 이경림 최승자 이성복 이문재 등 중진과 더불어 김이듬 송승환 김근 정재학 등 젊은 '미래파' 시인도 다수 다루고 있다. 이 중 미래파 논쟁을 촉발한 황병승의 첫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 (2005)를 해설한 '완전소중 시코쿠'는 황 교수를 미래파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비평계의 '젊은 오빠'로 등극시켰다. 일부러 번역시의 꼴을 취해 기존 한국시에 없던 음조, 정서, 통사구조를 창안하는 황병승의 시적 전략을 예리하게 분석한 글이다. 4부는 작고 시인들이 남긴 논쟁적 작품을 다루고 있다.

황 교수의 비평이 지닌 미덕 중 하나는 정신분석학, 언어학, 기호학 등 일반 독자에게 어려운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여 그의 글은 정교하되 난해하지 않다. 그에게 누구나 읽을 만한 대중적 글쓰기를 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건 아니다. 대신 "문학적 언어를 어떤 이론에 환원하는 것에 불만이 있다"고 말했다. "시는 주어진 체계의 바깥으로 나오려고 할 때 탄생하는 것입니다. 기존 이론 체계에 끼워 맞췄다간 깡그리 무(無)로 돌려버릴 수 있습니다. 문학 비평의 방법은 바로 작품 안에 있고, 작품과 교섭하며 글을 써가는 가운데 수립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평은 개별 작품마다 고유한 해석틀을 찾아야 하는 작업일 텐데, 그 고단함을 그는 "글 쓰는 것, 문장 하나 쓰는 것이 모험"이라고 표현했다.

"문학하는 사람은 정치적이어야 한다"(52쪽)고 말하는 황 교수는 굳이 따지면 '좌파 문인'일 테지만, 그의 비평에선 문학의 예술성(우파)과 정치성(좌파)의 조화로운 공존 가능성이 분명히 감지된다. 그것은 문학의 '내재적 정치성'에 대한 긍정에서 비롯하는데, 문학이란 애당초 "보지 못했던 것을 보는 일이며, 말하지 못했던 것을 말하는 일"이자 "삶을 바꾸는 일"(36~37쪽)이기에 본질상 '정치적'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시인이 더 좋은 시를 쓰려고 노력할수록 세상을 낫게 만드는 데 더 많이 기여하게 마련이라는 것.

45세 때인 1990년 문우(文友)인 소설가 김원우씨의 권유로 쓴 이청준 소설 서평으로 늦깎이 문학평론가 활동을 시작한 황 교수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프랑스 상징주의ㆍ초현실주의 시 연구와 번역의 권위자이기도 하다. 그는 "내 비평 문체는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확립된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어로 된 시구 하나를 놓고도 이에 걸맞은 한국어 단어ㆍ표현을 폭넓게 검토하고 성찰해온 경험이 언어에 대한 의식을 깨치고 비평 활동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책에서도 "가장 완벽한 한국어 문장을 구사하는 비평가"라는 그에 대한 정평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조영호기자 vold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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