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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연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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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연좌제

입력
2012.02.19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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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년 명나라 수도 난징(南京). 연왕(燕王) 주체는 당대의 유학자 방효유를 옥에서 끌어내 직접 만났다. 방효유는 상복을 입고 나왔고 예를 취하지 않았다. 연왕은 온갖 명분으로 회유했으나 방효유는 연나라 도적이 제위를 찬탈했다는 '연적찬위(燕敵簒位)'를 취했다. 연왕은 마지막으로 "즉위의 조칙을 기초해주면 선정을 베풀겠다"고 청했다. 이 역시 거부하자 연왕은 "구족을 멸해도 거부하겠느냐"고 협박했고, 방효유는 "십족을 멸해도 못한다"고 버텼다.

■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의 넷째 아들로 창업 공신인 연왕은 정난의 변을 일으켜 조카인 건문제를 쫓아내고 천하를 평정한 상황이었다. 모든 권력을 손에 쥔 연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방효유의 입을 귀밑까지 찢고 친족 4대, 외족 3대, 처족 2대를 모조리 잡아다 그 앞에서 참살하기 시작했다. 구족을 죽인 뒤 방효유의 문하생과 친구들, 즉 10족까지 죽였다. 그래도 방효유는 굴복하지 않았다. 이런 무도한 짓을 한 자가 명나라 기초를 다진 영락제다.

■ 연왕의 십족 참형은 역사상 가장 처참한 연좌제다.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연좌제가 명나라 영향을 받은 조선에도 통용됐고, 구족이 아닌 삼족까지 벌했다. 삼족은 친족, 외족, 처족이 아니고 할아버지, 백부인 조족(祖族), 형제와 조카인 부족(父族), 아들과 손자인 기족(己族)을 말했다. 쿠데타 격인 모반대역죄는 삼족을 처벌했고 이적행위인 모반죄는 그보다 약했다. 패륜범죄는 그 집을 연못으로 만들고 마을 수령을 파직하는 엄한 연좌제의 대상이었다.

■ 연좌제가 폐지된 것은 1894년 갑오개혁 때. 그러나 분단의 특수성 때문에 사상범, 부역자, 월북인사들의 친족은 연좌제 대상이었고 독재정권 시절 시국사범과 가족들도 그랬다. 감시, 고문을 당하고 취직도 못하는 비인도적인 연좌제가 다행히 민주화 이후 없어졌다. 그런데 북한은 김정일 사망 직후 애도기간에 탈북하면 삼족을 멸하겠다고 위협했다. 최근 탈북자들이 중국 공안에 체포돼 송환 위기에 처했다고 하니,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삼족이 참으로 걱정된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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