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을 만들어낸 사람 중 하나이며 불확정성 원리를 발견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1922년 괴팅겐대에서 최초로 양자역학적인 원자 모형을 만들었던 보어의 특강을 들었다. 강의 후 보어와 대화를 하고난 후, 원자의 세계를 탐구하고자하는 강렬한 충동이 20세의 하이젠베르크를 뒤흔들었다. 요즘 말로 하이젠베르크는 양자론에 '꽂힌' 것이다. 그때의 느낌을 이렇게 썼다. "나의 진짜 과학 경력은 그날 오후에야 시작되었다."
과학자는 태어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과학자로서의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분명 타고난 소질도 필요하고, 체계적인 교육도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그만큼이나 중요한 또 다른 요소는, 어떤 동기로, 혹은 어떤 이유로 과학자가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어떤 계기로 젊은이는 과학에 흥미를 가지게 되고, 자기 안에서 과학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해서,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하는 것일까? 어떻게 젊은 과학도가 평생의 길을 발견하는 것일까?
지금 우리가 물질의 가장 근본적인 구성단위라고 생각하고 있는 쿼크를 처음 제안한 미국의 물리학자 머레이 겔만은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는 세 살 때 웬만한 곱셈은 암산으로 할 수 있었고, 일곱 살 때는 철자법 대회에 나가 다섯 살이나 많은 애들을 이기고 우승했으며, 길을 가면서 보이는 모든 새들의 이름을 댈 수 있었다. 뉴욕 브롱크스 출신의 겔만은 어린 시절 집안이 그리 넉넉지 않았었는데, 여덟 살 위의 형 벤과 함께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연의 모습 속에는 질서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최초의 원자로를 만드는 등 핵물리학에 커다란 업적을 남겨서 20세기 가장 중요한 물리학자 중 한사람으로 꼽히는 엔리코 페르미는 열세 살 때, 단짝이던 형이 수술 도중 죽고 난 후의 상실감을 노천 벼룩시장에서 산 수학과 물리학 책을 공부하는 것으로 메웠다. 페르미는 얼마나 공부하는데 몰두했던지, 한번은 새로 사온 수리물리학 책을 다 공부하고 난 후에야 그 책이 라틴어로 쓰여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24일부터 서울 신라호텔에서는 현재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전 세계의 중견 및 젊은 물리학자들 30여명과 해당 분야의 국내 물리학자 20여명이 초대되어 LHC 시대의 입자물리학을 주제로 워크숍을 갖는다. LHC는 유럽 입자물리학연구소에서 건설한 역사상 가장 큰 가속기 실험이며, 지금까지 인류가 탐구해보지 못한 극미의 세계를 실험하는 장치다. 이 워크숍은 자연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를 탐구하고, 그 의미를 천착하며, 현대 물리학의 성과를 대중과 나누는 것을 목표로 젊은 물리학자들이 만든 '새로운 물리학 한국연구소'(가칭)의 첫 번째 사업으로 기획된 것이다. 연구소의 목적에 걸맞게 이번 워크숍에서는 물리학자를 꿈꾸는 중고생들을 초청해 워크숍 중의 하루를 공개한다. 초청된 학생들은 세계적인 물리학자들이 세미나 및 토론을 하는 모습을 참관하며 물리학자들의 학문적 일상을 체험하고, 학생들을 위한 강연을 듣고, 물리학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갖게 된다.
나도 2007년에 부산 과학영재고등학교 학생들과 R&E (연구-교육) 프로젝트를 하면서, 마침 그해 여름 대구에서 열린 입자물리학 국제 학회에 내가 지도하던 학생 네 명을 참관시킨 적이 있다. 학생들은 1988년 노벨상 수상자이며 미국 페르미 연구소 소장을 지낸 레온 레더먼 박사의 대중을 위한 강연에도 참가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학회에서 발표되는 연구 결과와 토론 내용을 이해할 수는 물론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가 되기를 바라는 학생들인 만큼, 실제로 물리학자를 만나고, 물리학자들이 토론하는 현장을 그저 참관만 하는 것도 충분히 흥미롭고 자극이 되는 경험일 수 있다고 믿는다. 우연히 과학자가 되는 사람은 없다. 박물관이든, 책이든, 혹은 직접 과학자를 만날 기회든, 과학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과학을 접하고, 과학의 즐거움을 느끼는 기회를 더 많이 얻을 수 있기 바란다.
이강영 건국대 물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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