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신영철 대법관 사태 이후 3년 만에 가진 소장 판사들의 논의는 결국 판사 재임용 제도에 대한 개선안을 요구하는 선에서 결론이 내려졌다. 집단 행동으로 보는 외부 시선과 서기호(42) 판사의 재임용 탈락을 두고 대법원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으로 비쳐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 남ㆍ서부지방법원에서 동시에 열린 이날 회의에서는 초반 재임용 심사 제도의 문제, 법원장 주도의 근무평정 평가 제도, 이에 대한 비공개 원칙 등에 대한 성토가 주로 이어졌다. 근무 평정의 항목과 기준의 적절성, 대상자의 평정절차 참여와 불복 방안 등에 대한 판사들의 구체적인 제안이 자유롭게 개진되기도 했다. 참석 판사들은 "대부분 공감하고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나 논쟁이 없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부 판사들이 "서 판사의 탈락 자체가 재임용 심사 제도의 부당함과 절차의 문제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얘기를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다수 판사들이 사전에 서 판사 개인에 대한 구명 운동 논의는 없다고 밝힌 점을 강조하며 "오늘 자리는 판사 심사 제도에 대한 논의의 장으로 서 판사의 재임용 결정이 옳으냐 그르냐를 얘기하는 자리가 아니다"며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미 서 판사가 행정 소송 등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한 상황에서 판사들이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 단독 판사는 "치열하게 양 쪽 주장이 부딪쳐 얘기가 길어졌다"고 상황을 전했다. 중앙지법에서는 회의 시간이 길어질 것에 대비해 참석 판사들은 저녁으로 김밥을 주문해 먹기도 했다. 남부지법 관계자는 "앞으로 판사 심사 제도를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 주로 논의를 했다. 서 판사의 경우 재임용 심사 자료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논할 수 없다고 의견 일치를 봤다"고 전했다.
그러나 오후 7~8시쯤 회의가 끝난 뒤 채택한 결의문에서 이들은 '이번 연임심사'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서 판사의 재임용 탈락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숨기지 않았다.
중앙지법은 "이번 연임심사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이 재판의 독립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했고, 남부지법은 "이번 법관연임심사가 불명확한 심사기준과 투명하지 않고 완비되지 못한 절차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오후 6시쯤 가장 먼저 회의를 마친 서부지법 판사들은 근무평정 중 부적격 판단을 받은 판사에게는 매년 사유를 알려주는 한편 해당 판사에게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주고, 연임 적격 여부가 문제되는 판사에게는 법관 인사위에 소명할 기회를 부여할 것 등의 내용이 포함된 건의문을 조만간 작성키로 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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