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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앤' 죽음을 불러들이는 ‘살인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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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앤' 죽음을 불러들이는 ‘살인의 추억’

입력
2012.02.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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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전아리 지음 /은행나무 발행·257쪽·1만1,500원

기완의 수줍은 사랑 고백을 모욕적인 말로 거절한 학교 '퀸카' 희진에게 기완의 친구들은 사소한 복수를 계획한다. 희진의 남자친구와 그녀의 심복 주홍을 한자리로 불러낸 뒤 그걸 증거 삼아 '희진이 버림받았다'는 헛소문을 퍼뜨린다는 그들의 계획은, 아뿔싸, 그 자리에 희진이 직접 나타나면서 어그러진다. 희진이 '배신자' 주홍을 가혹하게 폭행하고 보다 못한 기완 일파가 나서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희진은 우발적인 죽음을 맞는다. 미처 도망치지 못한 기완이 저 혼자 살인죄를 뒤집어쓰면서, 평화롭던 바닷가 마을의 고교 동창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 끔찍한 자멸의 세월로 들어선다.

소설가 전아리(26)씨는 여섯 번째 장편 <앤> 을 통해 '천재 문학소녀' '청소년소설 작가'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결연히 벗으려 한다. 아집과 불신 속에 제각기 타락해 가는 인물들을 묘사하는 냉정한 시선이나, 미스터리 소설의 필수 요소인 정교한 알리바이 구축에 정성을 쏟은 흔적이나, 여성이 아닌 남성 화자를 전면에 내세운 모험적 시도 등이 발랄한 해피엔드가 주종을 이뤘던 전씨의 예전 작품과 궤를 달리한다. 10대 시절부터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문재(文才)를 발휘해온 작가에게 있어 '과도기적 작품'으로 기억될 만한데, 독자를 단박에 사로잡는 빼어난 이야기 솜씨는 이번에도 여전하다.

소설의 화자는 기완의 친구이자 우발적 살인의 공범인 해영. 자기 통제를 벗어나는 것을 못 참는 강박적 성격과 비상한 머리의 소유자다. 사건 현장에서 주홍의 손을 붙들고 도망친 이래로, 애인이자 후견인으로서 연예인이 된 그녀의 삶을 배후 조종한다(혹은 그렇다고 믿는다). 손아귀에 꽉 쥔 듯 여겨졌던 그의 삶은 출소 후 폐인처럼 살아가던 기완이 옛 친구들에게 노골적으로 거액을 요구하면서 균열이 일어난다. 특히 이미지 관리가 생명인 주홍을 겨냥해 진실 폭로를 운운하는 기완의 협박은 그에게 있어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잘 나가는 펀드매니저 재문, 형사가 된 다혈질 성격의 진철, 속을 알 수 없는 미남자 유성, 그리고 자기 삶의 전부나 다름없는 주홍, '살인의 추억'을 공유한 네 친구의 리더를 자처하며 기완이라는 삶의 걸림돌을 걷어치운 해영은 그러나 주홍과 자신이 나머지 셋과는 더 이상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낌새를 감지한다. 때마침 주홍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스토커가 나타나자 해영은 셋 중 하나를 용의자로 확신한다. 언제든 자신과 주홍을 파탄 낼 비밀을 공유한 '적'들을 향해 집착과 망상으로 범벅 된 해영의 사적(私的) 복수가 시작된다. 삶을 지키려 애쓸수록 죽음에 가까워지는 운명을 모른 채.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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