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노래에서 느끼기 어려운 ‘감성’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아날로그적 향수가 짙으면서도 누군가는 꼭 좋아할만한 노래, 뭐 그런거요.”
걸 그룹과 아이돌 음악이 판치는 대중 음악계에 신선한 도전장을 내민 이는 다름 아닌 공중파 방송 PD다. MBC 라디오 PD 송명석(34)씨는 최근 동갑내기 작곡가 서정진씨와 함께 ‘사랑해, 희망없이’라는 제목의 앨범을 냈다. 음반만 발표한 것이 아니라 무대에도 직접 뛰어들었다.
사실 두 사람은 음악을 시작한 지 10년이 훨씬 넘은‘프로’다. 고려대 1학년때 학내 밴드 ‘1905’에서 처음 만난 뒤 줄곧 음악과의 연을 이어왔다. 라디오 PD와 대중가요 작곡가로 무대 뒤 조연에 머물렀던 이들은 지난해 그룹 ‘포이트리’를 결성했고, 1년 만에 11곡의 자작곡이 담긴 앨범을 선보인 것이다.
17일 서울 삼성동 녹음실에서 만난 송씨는 “대중음악을 그냥 두고보긴 어려웠다”는 말로 앨범을 낸 이유를 대신했다. “대중가요 프로그램을 연출하면서 인기 그룹의 노래들이 어느 날 갑자기 시선을 끌었다가 순식간에 잊혀지는 것을 지켜봤어요. 쉽게 만들고 쉽게 소모되는 음악이 아닌, 오랜기간 불려질 수 있는 노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옆에 있던 서정진 작곡가도 거들었다. “예전엔 음악 한 곡 녹음하는데 수십 번씩 재녹음을 해야 했지만, 요즘엔 기계를 사용해 하루 만에 녹음을 마칩니다. 기계음으로 잔뜩 포장된 사운드를 탈피하고 싶은 욕구가 ‘사랑해, 희망없이’를 낸 계기가 됐어요.”
이들의 음악 지향점은 철저하게 감성에 맞춰져 있다. 그룹 이름을 시와 나무라는 의미의‘포이트리’로 지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음악에‘시적인 가사’와 ‘나무로 만든 악기 소리’를 담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서씨는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가사를 줄이고 은유적인 가사를 담으려 했다”며 “화려한 사운드에 묻혀있던 가사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순간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앨범 제목이기도 한 ‘사랑해, 희망없이’는 그가 연인과 헤어진 뒤의 상실감을 표현한 곡. 이를 부른 신인가수 박지혜는 “가사를 음미하면서 헤어진 연인이 아닌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렸다. 개인적으로 잊지 못할 노래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가사’만큼‘소리’에도 비중을 뒀다. “요즘 음악은‘컴퓨터 음악’이에요. 실연보다는 기계의 힘을 빌리는 거지요. 노래 반주에 필요한 베이스와 건반 등 모든 악기를 직접 연주해 어쿠스틱한 느낌을 살렸습니다.”송씨의 설명이다.
음악에 대한 변화를 추구하는 이들의 취지에 공감한 기성 가수들도 앨범 작업에 힘을 보탰다. 정엽, 화요비, 옥상달빛 등 획일화한 가요계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내고 있는 가수들이다. 포크와 솔이 어우러진 신선한 음악에 매료돼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정엽이 부른 타이틀 곡‘로스트’는 벌써부터 온라인에서 반응이 뜨겁다.
두 사람은 곧 앨범 출시 기념 공연을 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현란한 춤과 사운드에 밀려나 있던 음악들을 불러내야죠. 그러면 우리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감성’도 깨울 수 있을 겁니다.”
글ㆍ사진 손효숙 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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