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우수한 인적자원의 확보는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이다. 따라서 인적자원의 우수성을 측정하는 도구가 필요하며, 각 나라는 각각의 측정도구를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자격은 학위와 더불어 인적자원개발 및 지식축적의 결과를 외부적으로 표시할 수 있는 지표이며, 교육훈련과 노동시장을 연계하는 가장 대표적인 신호기제이다. 따라서 자격제도는 단순히 노동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인적자원개발의 핵심적인 인프라로써 국가경쟁력 강화의 핵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자격제도의 역할은 교육시장에서 대학 수학능력시험제도의 역할과 비교해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수능 점수는 대학에서 학생을 선별하는 기준이 되고, 따라서 고등학생은 자신의 점수를 고려하여 대학을 선택한다. 그리고 교육기관(학교나 학원)은 수능의 출제기준과 부합되는 교육과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교사는 이에 필요한 교수역량을 보유해야 한다. 교육기관은 학생의 수능점수 분포에 따라 평가되고, 이는 교육 분야에서의 시장 압력e)으로 작동한다. 국가는 수능제도를 통해 중등교육의 내용과 수준을 통제하고, 국가교육정책의 근간으로 활용한다. 직업자격을 직업능력시험제도로 이해하면 그 중요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 자격에서 시장에 대한 신호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 자격은 시장에서 효용성이 없는 것이고, 불필요한 자격이다. 산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직무수행능력은 기술 및 직무 등의 변화와 더불어 빠르게 변화하므로 자격의 효용성 역시 변화하게 된다. 따라서 자격의 현장 효용성은 정기적으로 점검되어야 하고,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그 원인을 파악하여 그 자격 자체의 폐지, 다른 자격과의 통합, 혹은 출제기준이나 검정방법의 개선 등의 처방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국가기술자격은 각 종목별로 기업, 근로자, 교육훈련기관, 그리고 국가가 자격의 신호기능을 자신의 입장에서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자격제도 및 검정 방식 등이 수시로 개선되어야 한다.
그런데 국가기술자격의 효용성은 산업 현장의 직무단위를 적절히 선정하고 있는가, 그리고 산업수요를 반영하는 평가문항을 개발하였는가하는 자격설계의 적절성, 또 해당 자격이 노동시장에의 진입, 활용, 고용안정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는가라는 자격의 노동시장 효과성으로 구분하여 평가할 수 있다. 지난해 섬유기사 등 113개 국가기술자격에 대한 효용성 평가 결과, 약 83%(94개)의 자격증이 현장성이 있는 등 자격 설계가 적정하고 또한 시장에서의 효과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들 들면, 철도신호기사의 경우 노동시장의 직무단위에 적합한 크기로 자격이 설계되었고, 직무수행에 필요한 지식과 스킬을 평가항목에 반영하여 자격이 적절하게 설계된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철도신호기사의 경우 자격 취득자는 산업 현장에서 선발, 배치, 임금, 승진 등의 측면에서 자격을 취득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우대 받고 있다. 그러나 섬유기사, 멀티미디어콘텐츠제작전문가 등의 자격은 노동시장의 직무단위에 비해 지나치게 크게 자격이 설계되었고, 제한된 검정 시간에 해당 직무능력을 효과적으로 평가할 수 없어 노동시장에서 자격으로 제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 등 17%의 자격증은 효용성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운용중인 국가기술자격 종목 중 약 80% 이상은 기업에서 효용성이 있다고 평가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사실이지만, 자격의 효용성 및 신호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자격의 설계 측면에서 살펴보면 자격의 범위 및 검정내용을 현장의 요구에 부합하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가기술자격제도 운영에 산업체 참여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또한 검정시행은 교육훈련 현장과 밀접한 관련 하에 시행될 수 밖에 없으므로 현장에 부합되는 교육훈련이 필수적이다.
직업교육의 내실화와 자격제도의 효용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은 단기간에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장기 로드맵을 우선 도출한 후, 산업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도록 산업별 인적자원개발 협의체를 활성화시키고, 직업교육 및 자격설계의 핵심 내용인 국가직무능력표준을 개발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어수봉 한국기술교육대 HRD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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