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토요 에세이] 부리는 힘, 섬기는 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토요 에세이] 부리는 힘, 섬기는 힘

입력
2012.02.17 12:01
0 0

선거철이 되면 어김없이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은 변화의 바람이고 선거판세는 늘 변화의 바람에 흔들린다. "그래, 바뀌어야 한다. 이 정권 아래서 내 형편이 나아진 것이 무엇인가. 그래, 바꾸어야 한다. 새 정권이 들어선들 내 형편이 더 나빠질 것이 무엇인가." 특히 젊은 유권자들의 마음은 새로운 변화, 새로운 기대에 부풀어 오른다. 바꾸어야 할 명분도 있고 바꿀 수 있는 능력도 있다. 최근 몇 차례 선거는 그들의 능동적인 참여로 새로운 변화를 경험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이 힘을 보탰던 변화의 바람은 그들이 기대했던 변화와는 언제나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왜 선거에 관한 한 "혹시나" 하는 기대는 "역시나"하는 실망에 그칠까. 권력의 본질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권력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돈이 사람을 가리지 않듯 권력 또한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다. 권력을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람이 권력을 장악하기보다 권력이 사람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사람이 돈을 소유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돈이 이미 사람을 소유하는 것과 같다. 사람이 돈을 부릴 힘이 없다면 돈이 사람을 부리듯, 사람이 권력을 부릴 능력이 부족하다면 권력이 사람을 부린다. 내가 권력을 행사한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사실은 권력이 나를 행사한다. 권력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재빨리 장악한다. 권력은 언제나 사람을 권력 편으로 끌어들인다.

"모든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액튼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권력은 단 한 번도 부패한 적이 없다. 권력은 결코 변화한 적이 없다. 권력은 어느 시대나 누구에게나 '사람을 부리는 힘'이다. 권력은 언제나 권력 그대로다. 부패하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사람이고, 절대적으로 부패하는 하는 것은 절대권력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을 부리는 힘'은 나를 부리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을 부리고 만다. 한결같이 새로운 변화를 목청껏 외치던 사람들이 5년이 되지 않아 추풍낙엽처럼 흩날린다. 활짝 핀 꽃이 열흘을 못 가고, 세상을 뒤흔드는 권력도 5년을 못 간다. '사람을 부리는 힘', 곧 권력은 권력을 쥐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마음껏 부리다가 때가 차면 또 다시 부릴 사람을 찾는다.

이제 다시 권력이 사람 찾는 때가 돌아왔다. 또 한차례의 바람을 어떻게 맞아야 하나. 무엇보다 돌풍의 주역들을 세밀히 관찰해야 한다. 그들의 말과 행적을 살펴야 한다. 말은 어떻게 바뀌었나. 행동은 말과 일치하는가. 바람을 일으키는 주변 인사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과연 진정성은 있는가. 이런 일들에 무관심하다면 한 순간에 돌풍은 판을 삼킬 것이다. 세상사가 시들해 정치판과 담을 쌓는다 해도 담은 곧 허물어지고 만다. 정치로부터 무관한 삶은 없다. '사람을 부리는 힘'이 장악할 사람들의 실상은 어떤 모습일지 주목해야 한다. 혹시 그들 가운데 그 '사람 부리는 힘'을 부릴 능력이 있는지 찾고 또 찾아야 한다.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이라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선거철이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세상은 '사람을 부리는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대중적인 지지가 하늘을 찌를 때, 예루살렘에 입성해 신당 문패만 내걸면 압승할 수 있을 때, 마음만 먹으면 혁명으로라도 집권이 가능할 때 뜻밖에 십자가를 향했다. 대권의 길과 십자가의 길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왜 왕이 아니라 십자가였을까. 권력은 어김없이 '남을 부리는 힘'이지만 십자가는 '남을 섬기는 힘'이기 때문이고, 사람의 본질은 오직 권력이 아니라 사랑으로만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십자가를 진 권력, 나를 부려 남을 섬기는 청지기,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개혁의 길을 걸었던 윌리엄 윌버포스와 같은 정치가를 기다린다.

조정민 온누리교회 목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