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고 안타깝다. 돌부처 이창호가 또 세계 대회 준우승에 그쳤다. 이창호는 13, 15일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 1층 바둑TV 대국실에서 벌어진 제 16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 3번기 1, 2국을 중국의 신예 장웨이지에(21ㆍ5단)에게 내리 지는 바람에 종합 전적 0대2로 완패했다.
이로써 이창호는 최근 7년간 각종 세계 대회서 10회 연속 준우승이라는 달갑지 않은 신기록을 수립했다. 메이저 세계 대회서 우승을 차지한 건 2005년 3월 제 5회 춘란배가 마지막이다. 이후 2006년 1월 제10회 삼성화재배서 중국의 뤄시허에게 1대 2로 패한 것을 시작으로 이번 LG배까지 7년 동안 치른 세계 대회 결승전에서 내리 고배를 마시는 지독한 준우승 징크스에 시달리고 있다. (표 참조. 2007년 7월 대만이 주최한 중환배서 한 번 우승했으나 중국 선수가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메이저 세계 기전으로 치지 않는다.)
그동안 세계 대회 결승전에서 10회 연속 준우승에 그치면서 거둔 전적이 2승 17패. 특히 2009년 4월 응씨배서 1승 후 3연패 한 후에는 단 한 판도 이기지 못하고 10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결승 상대도 다양하다. 창하오와 두 번 마주 쳤을 뿐 나머지는 모두 다른 얼굴들이다. 뤄시허, 구리, 콩지에를 비롯해 최철한, 박영훈, 강동윤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중국의 강자들에게 돌아가며 한 번씩 무릎을 꿇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완전히 동네북 신세가 된 셈이다. 1990년대 전성기에는 12회 연속 세계대회 우승 기록을 작성했고 22년간 결승 5번기 통산 승률이 80%가 넘어 '번기의 제왕'으로 불렸던 이창호가 최근 세계 대회 결승전서 거둔 성적이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참담한 패배다.
물론 7년 동안에 열 번이나 세계 대회 결승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긴 하다. 더욱이 이번 LG배서는 사상 처음으로 예선부터 출전해 9연승을 거두고 결승에 진출했다. 그동안 구리, 이야마 유타, 씨에허 등 중국과 일본의 쟁쟁한 강자들을 차례로 물리쳤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상대적으로 쉬운 상대로 여겼던 장웨이지에에게 너무나 힘없이 무너졌다. 결승 1국에서 초읽기에 몰려 대마의 사활을 착각하는 바람에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바둑을 어이 없이 역전패 당하더니 2국에서는 1국 패배가 부담이 됐는지 초반부터 너무 서두르다가 그만 형세를 그르치고 말았다. 과거 '신산'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마치 컴퓨터처럼 정확했던 형세판단능력과 종반 집중력이 최근 들어 현저히 떨어진 느낌이다.
이로써 지난해 2월 마지막 남은 타이틀인 국수를 최철한에게 내주면서 시작된 이창호의 무관 상태가 만 1년을 넘어서면서 장기화될 조짐이다. 사실 이창호는 앞으로 국내외 기전 결승 진출은커녕 본선에 오르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부터 국내 랭킹이 5위권 밖으로 밀려났기 때문에 세계대회 본선에 나가려면 예선부터 출전하거나(한국 주최 기전) 한국에 주어진 본선 시드 정원의 4배수가 참가하는 선발전을 통과해야 한다.(외국 주최 기전) 이창호는 얼마 전에 열린 춘란배 대표선발전에 출전했으나 이미 탈락했고 초상부동산배 선발전에는 아예 출전조차 하지 않았다. 27일부터 시작하는 비씨카드배 통합예선에는 출전하지만 3월에 베이징에서 열리는 바이링배 통합예선에는 나가지 않는다. 농심배서는 벌써 수 년째 예선 탈락했지만 다행히 주최측 와일드카드로 매년 선정돼 계속 본선에 나갈 수 있었다.
국내기전 쪽도 사정이 별로 다르지 않다. 지난해 4강에 올랐던 명인전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기전에서 예선 1회전부터 출전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 국내기전 예선은 랭킹 1, 2위 이세돌, 박정환도 아차하면 뻥뻥 나가떨어질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결승까지 오르기란 실로 하늘의 별따기다.
지난 20여 년간 국내외 기전에서 138번(국내 117, 국제 21)이나 정상에 오르면서 세계바둑계를 석권했던 이창호가 과연 언제쯤 다시 화려하게 비상할 수 있을 지 궁금하다.
박영철 객원 기자 indra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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