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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나의 도움이 오는 곳' 옆집 순희와 앞집 철수가 그립다면…이웃에게 문을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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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나의 도움이 오는 곳' 옆집 순희와 앞집 철수가 그립다면…이웃에게 문을 열어라

입력
2012.02.1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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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도움이 오는 곳/피터 로벤하임 지음·한세정 옮김/21세기북스 발행·308쪽·1만3000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윗층 아주머니가 동승한 다른 남성에게 불평을 털어 놓는다. 그 남자는 아파트 동대표였나 보다. "새로 되셨는데 주민들한테 얼굴은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요? 한 번 만남의 자리를 만드셔야지." "알릴 것은 게시판 공지로 다 내는데…." "그게 아니라, 얼굴 마주 보고 인사도 하고…." "아, 예 예." 다그침을 당하느라 문이 열렸는데도 내리지 못한 동대표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얼른 집에 가고픈 나도 좀 짜증이 났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다시 움직이자 아주머니가 이번에는 나를 향해 묻는다. "동대표 얼굴 보자는 제가 뭐 잘못한 건가요." "저는 그런 데 관심 없어요." 그렇게 두 번 대답하고 문이 열리자마자 도망쳤다.

모르긴 해도 아파트 공화국 한국의 이웃 사정이 대체로 이렇지 않을까. 아니 인구가 밀집한 현대 대도시의 사정이 대체로 이와 같다면 '우리 동네 진짜 이웃 찾기 프로젝트'라는 부제를 단 미국 저널리스트의 이 책은 기획 자체로 눈길을 끌 만하다.

저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뉴욕주 로체스터 산드링험로드의 36가구 한 집 한 집을 방문해 하룻밤 묵기를 청하기로 한 것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다수인 그 지역에서 2000년에 일어난 살인사건이 계기였다. 부부가 의사인 4인 가족 집안에서 가정 불화를 겪던 남편이 부인을 총으로 쏴서 죽이고 자살을 한 것이다. 숨진 부인은 사건 당일 불길한 조짐을 느껴 좀 떨어진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집 전화로 'SOS'를 쳤지만 불행히도 그 친구는 여행 중이라 전화를 받지 못했다. 만일 그가 옆집이든 뒷집이든 이웃을 잘 알고 친하게 지냈더라면 참극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의문에서 출발해 그는 한 집 건너 사는 은퇴한 외과의사 루이스 구제타부터 40년 넘게 그 지역을 조깅하는 90세가 다 된 그레이스 필드, 이사온 지 얼마 안 되는 데브 오델 부부, 부동산 중개업자 제이미 콜럼버스, 역시 의사인 빌 프리케 가족의 집에 묵거나 만나서 오랫동안 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다. 어쩌다 마주치면 건성으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하고 살고 있는지,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다. 그들의 이웃에 저자 같은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려주려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이웃은 로버트 퍼트넘 같은 학자들이 말하는 '사회적 자본'이며 '문명사회의 기본적인 원자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다른 뭔가를 할 돈도 없고 그럴 기회도 적었던 몇 세대 전만 해도 '이웃과의 교류가 곧 삶'이었다고 돌이켜보는 저자는 경기 침체로 여행이나 기타 오락 지출을 줄이는 지금이야말로 이웃 간의 장벽을 무너뜨릴 최적의 시기라고 말한다. 미국에서는 22%의 단독주택과 38%의 아파트에 단 한 사람이 살고 있고 그 인구가 약 3,0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혼자 살다가 죽은 뒤 아무도 시신을 인수해가지 않는 사람이 해마다 3만명을 넘는다. 이웃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그리고 우리가 이웃에게 해줘야 할 것이 갈수록 많아질 게 분명하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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