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하여튼 좀 유별난 우리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하여튼 좀 유별난 우리들

입력
2012.02.17 11:39
0 0

승무원인 여동생을 따라 필리핀의 한 섬에서 연말 휴가를 보낸 적이 있다. 공짜 비행기 티켓인데다 동생이 머무르는 호텔에서 꼽사리로 먹고 자는 패키지라 부랴부랴 짐을 꾸려 도착하니 웬걸, 작은 바닷가 마을에 영어와 타갈로그어로 된 간판들 사이 비죽비죽 한글이 읽히는 거 아닌가.

누구네 조개구이며 노래방이며 삼겹살이라는 글자들이 예가 한국의 어촌인가 싶게 순식간에 우리를 질펀한 우리네 밤의 술상에 불러다 앉히는 듯했다. 역시나 대단한 한국인들이라니까. 이곳까지 고기구이용 숯불을 침투시킨 놀라운 생활력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했던 건 가게 곳곳에 붉은 래커로 갈겨져 있던 어떤 분노의 표출 때문이기도 했다.

대체, 누가, 왜, 라고 하기에 지레 발이 저리는 이 느낌은 뭐람. 일거리가 없으면 방구석 시체가 되는 우리와 달리 반바지에 맨 웃통 차림으로 하릴없이 집 앞을 서성대던 그들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허연 이를 드러내며 잘도 웃었다. 타고난 특유의 낙천으로 가난을 오래 견뎌온 사람들이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못 배우고 가지지 못한 것은 아닐 터.

현지 가이드의 말을 빌자니 특히나 술이 취해 벌이는 한국인들의 추태와 무시가 젤로 심하다나. 돈 뿌리러 왔으니 제 돈 뿌려가며 왕 노릇 하는 걸 어쩌겠냐만 그런 몇몇의 헤픈 짓거리로 스노 쿨링이나 즐기려는 소박한 우리들이 납치의 표적이 된다는 건 해도 너무 한 일, 그렇게나 억울한 일.

김민정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