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만원 대 6만5,600원'. 16일 기준 파프리카 씨 1g과 금 1g 시세다. 이 수치는 황금시장으로 평가 받는 종자산업의 가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황금시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기에 국내 종자업계는 아직 영세하다. 하지만 정부와 민간업체들은 세계 종자시장의 70%를 점하는 10대 다국적기업들과 맞서며 수출을 늘리기 위해 힘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
세계 종자시장 한국 점유율 1%
세계 종자산업 시장은 연 5%씩 성장한다. 16일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세계 종자시장은 1975년 120억달러에서 2010년 698억달러로 5배 넘게 증가했다. 2020년 시장규모는 2010년보다 2배 이상 늘어난 1,650억달러로 추정된다. 게다가 지난달 7일부터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 협약에 따라 해조류를 포함한 모든 식물품종 종자 보호제도가 전면 시행되면서 종자산업의 지적재산권의 가치가 한층 높아진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정부도 올해 지불해야 할 로열티를 최대 205억원까지 잡고 있다. 이는 2010년 153억원에 비해 34%나 증가한 것이다. 반면 2010년 기준 국내기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10억3,000만달러로 1%대에 그친다.
이처럼 급성장하는 종자시장을 다국적기업들이 가만둘 리 없다. 미국에 본사를 둔 몬산토는 2009년 채소 종자시장에서 매출액 73억달러, 점유율 26.9%로 1위를 기록한 대표적 다국적 기업이다. 몬산토는 2005년 3월 세계1위 채소 종자기업인 세미니스를 인수한 후 식품ㆍ종자산업을 수직계열화했다. 또 연간 12억달러를 종자개발 등 연구개발(R&D)에 투자하며 경쟁기업과 격차를 더 벌리려 하고 있다. 이에 맞서 다른 다국적기업들도 경쟁력 있는 종자기업을 인수합병하며 덩치를 키우면서 유전자원(遺傳資源)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적할 국내 종자산업 업계의 현실은 암담하다. 국내 950개 종묘업체 중 종업원 수가 10명 이상인 곳은 23개사에 불과하다. 업체들이 영세하다 보니 종자개발의 핵심인 유전자 분석과 기능성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없다. 결국 많은 영세업체들이 우수한 품종의 유사품종을 복제해 헐값에 유통시키면서 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다.
이런 열악한 현실의 이면에는 외환위기 당시의 뼈아픈 상처가 남아있다. 1997년말 외환위기 발생 후 자금압박이 심해지면서 국내 5대 종자기업 중 4곳이 다국적기업에 인수됐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유전자원과 종자연구 기술진이 외국기업에 넘어갔다. 간신히 살아남은 국내 기업들은 최첨단 연구시설을 갖추고 있는 다국적기업의 앞선 기술력과 브랜드 인지도에 밀려 힘겨운 경쟁을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종자산업은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산업이어서 격차를 줄이는 것이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토종업체 1,000만달러 수출 달성
이 같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토종 업체인 농우바이오는 매출액이 2009년 460억원, 2010년 484억원, 지난해 555억원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 회사는 외환위기 당시 5위권 기업 중 유일하게 독자생존에 성공했다. 이후 지난해 기준 국내 점유율 27%로 1위를 기록하며 다국적 종자기업에 맞서고 있다. 농우바이오는 5,000여점의 유전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수출 1,360만달러를 기록 무역의 날에 '1,000만불 수출탑'을 받았다. 중국 시장 개척에도 성공해 지난해 중국 현지법인이 2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농우바이오 관계자는 "중국은 시장규모가 크고 다양한 유전자원 확보가 용이하다고 판단 한중 수교 이전인 1987년부터 일찍이 사전정지 작업을 거쳐 1994년 2월 현지법인을 설립했다"고 밝혔다.
고군분투하는 민간업체의 노력에 정부도 지원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우선 정부는 종자개발의 핵심인 R&D에 10년 동안 4,911억원을 투자한다. '골든시드(Golden Seed) 프로젝트'로 명명된 이 사업은 2021년까지 수출 2억달러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담당인 이상집 농림수산식품부 종자생명산업과 사무관은 "품종 개발ㆍ연구와 같은 육종은 어느 단계까지는 어렵지만 탄력을 받기 시작하면 목표달성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농식품부는 700억원을 투입해 2015년까지 전북 김제시에 53만㎡ 규모의 육종연구센터인 '시드밸리(Seed Valley)' 조성도 추진하고 있다. 10년 이상 걸리는 새로운 품종 개발을 위해서는 유전자분석, 기능성 분석 등이 가능한 첨단 연구센터가 필수적이지만 국내 업체들은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시설이다. 2015년 시드밸리가 완성되면 국내업체들은 임대료만으로 맘 놓고 연구를 할 수 있는 육종연구단지를 갖게 된다. 정부와 업계 관계자들은 "민간 업체가 그 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활용해 종자연구에 매진하고 정부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지원하면 짧은 기간 안에 종자강국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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