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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나쁜놈들 전성시대

입력
2012.02.1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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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아주 흥미롭게 봤다. 우리 사회부 기자들에게 시간 나면 꼭 보라고 권했다. 사건과 비리를 취재하고 분석하는 데도 훌륭한 참고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대사처럼 "살아있네"라는 감탄사가 나오게 만드는 배우들의 연기, 시종 눈을 뗄 수 없을만치 극적 긴장을 팽팽하게 당겨놓은 연출이 압권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80~90년대를 살았던 이들이라면 추억에 젖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세태 묘사와 분장과 음악도 큰몫을 한다.

그런데 이 영화를 조폭(내지는 양아치)과 세무공무원 출신 비리 반달(반건달), 그리고 깡패못지않은 검사가 신나게 치고 받는 이야기로만 보는 관객은 드물다. 영화가 끝나면 묘한 여운이 남는다는 것이 주변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그 여운은 영화 속 나쁜놈들의 전성시대는 막을 내렸는지 몰라도 극장 밖으로 나오면 여전히 나쁜놈들의 전성시대가 계속되고 있다는, 그런 막연한 느낌 같은 것이다.

15년 빵 살래 말래 하는 검사의 협박과 냉혹한 주먹 하정우의 회칼을 잔머리로 이겨내고 성공한 사업가가 된 최민식, 그는 아들을 검사로 만들었다. 다시는 수모를 되풀이 당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아들의 인생에는 그 수모를 대물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사실상 한국사회의 비리 구조가 대를 이어 지금도 지속되면서 온존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역설적으로 전한다.

영화 이야기가 길어진 것은 이명박 정권 말기의 모습이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우리사회가 민주화된 이후부터만 따져도 역대 정권의 말로가 한결같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정권 말기에 들어서면 출범 당시의 서슬퍼렇던 기세는 사라진 채, 친인척과 측근들의 비리 내지 추문으로 무너지기 시작해 마지막에는 아예 존재하지 말았어야 할 정권으로 치부돼고 말았던 역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5년 단임 정권의 숙명인지 모르나 그것은 단지 정권의 불행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불행이다. 민주화 이후 정권이 네 번 바뀌었지만 정권 차원의 비리 구조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나쁜놈들의 전성시대는 얼굴만 바뀐 채 계속돼 온 셈이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곧 검찰의 방문조사를 받는다. 그는 2008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과 관련된 의혹의 정점에 있다. 최종 수사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어떻든 한 나라의 현직 국회의장이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스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박 전 의장은 잘 알려져있듯 현 정권 집권의 주역들, 이른바 개국공신들의 모임으로 알려진 '6인회'의 멤버다. 이 대통령을 비롯해 박 전 의장과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이 그 면면이다. 박 전 의장에 앞서 최 전 위원장 역시 최측근의 금품수수 의혹 등이 불거지며 4년간 종합편성채널 선정 등 방송통신정책을 좌지우지했던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이 의원도 보좌관의 로비 명목 금품수수, 여비서 계좌의 정체불명 뭉칫돈 7억원 의혹 등으로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는 형편이다.

이들이 정권 막후의 최고 실세들이었다면, 대통령을 지근에서 보좌했던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김두우 전 홍보수석 등도 각각 돈봉투 사건과 부산저축은행 사건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거나 구속됐다. "가장 깨끗한 정권"을 외치던 대통령의 막전막후 실력자들이 줄줄이 비리에 연루되거나 의혹을 받으면서 이번 정권도 일찌감치 절름발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25일로 취임 4주년이 되는 이명박 대통령은 다음 주 중반쯤 기자회견을 열고 측근 및 친인척 비리에 대한 사과의 발언을 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솔직히 사과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는 대통령들의 모습도 보았고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는 대통령들의 모습은 과거에도 자주 목도했다. 하지만 그뿐이 아니었나. 나쁜 권력의 전성시대는 주인만 바뀐 채 계속됐다. 이제는 깨끗해서 당당한, 그런 권력의 얼굴을 보고 싶은 것이다.

하종오 부국장 겸 사회부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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