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암 환자는 병원진료비가 100만원이 나왔다면 이중 평균 29만6,000원(2010년 기준)을 본인이 낸다. 나머지는 건강보험에서 보장해 준다. 심장질환은 30.8%를, 뇌혈관질환은 33.9%를 환자가 낸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의료복지 수준을 알려주는 주요지표인 건강보험 보장률 통계가 병원들의 비협조, 정부와 국회의 지원 뒷전 등으로 7년 만에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보강해야 할 지표를 오히려 폐기하려는 것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16일 보건복지부,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 따르면 2004년도 통계부터 7년간 매년 조사해 발표해온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를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복지부와 공단은 "새로운 지표를 개발하겠다"고 설명했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태다.
건보 보장률 통계는 감사원의 지적에 따라 도입됐다. 건강보험이 어느 정도 국민의 의료비를 책임지는지 알려주는 통계가 없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됐고, 공단은 2005년부터 병원ㆍ약국의 표본을 추출해 전년의 진료비 내역을 제출받아 통계를 작성했다. 이후 통계청의 국가승인통계로 인정받았다.
그런데도 조사 폐지를 검토하게 된 것은 국회와 정부의 방치 아래 공단이 진료비 내역을 넘겨받기 위해 병원들에 애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들은 건보적용이 되지 않는 병실료, 특진비 등 비급여 규모가 드러나는 것을 꺼려 자료 제출에 소극적이다. 그래서 조사표본은 전체 의료기관의 1% 안팎에 불과했다. 더구나 건강보험 적용에서 포괄적으로 제외된 보철비, 첩약비(한약), 일반의약품, 성형 비용은 아예 조사ㆍ집계 대상에서 제외돼 보장률이 정확하지 않다는 한계가 지적돼 왔다. 조사 주체인 건보공단 산하 건강보험정책연구원 내부에서는 "병원들은 자료를 주지 않고, 국회는 제도 마련은 안 해 주면서 국정감사 등에서 통계 미비만 지적하는데 치가 떨린다"며 "차라리 조사를 중단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건강보험법에 병원들의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는 조항을 만들면 되지만, 국회와 정부는 병원 눈치를 보며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건강보험법에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은 비급여 항목에 대해서까지 자료제출을 의무화하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고 말했다.
복지부와 공단은 '필수의료서비스에 대한 보장률' 등 다른 지표를 만들어 대체하는 방안을 연구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필수의료서비스가 무엇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산재ㆍ자동차보험ㆍ의료급여까지 포함된 국민의료비 통계에서 건강보험 보장 부분만 따로 떼어서 새로운 통계를 만드는 방안 등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의료비는 병원 조사가 아니라 통계청의 가계조사 등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질병별 보장률 등의 통계는 얻을 수 없다. 어떤 식이든 보건 지표의 후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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