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이룬 외교관의 꿈을 이렇게나마 이룰 수 있어서 기뻐요."
한국국제입양인봉사회(InKAS)의 자원봉사자 남혜미(27)씨는 3년째 해외입양인들과 고국을 이어주는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해외입양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영어로 번역하고, 반대의 경우엔 한글로 옮겨주는 일이다. 남씨가 지금까지 번역한 편지만 60여 통. 그는 "딸에게 결혼을 재촉하거나 출산한 며느리의 소식을 묻는 등 일상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소소한 내용이 대부분"이라며 "편지를 번역하고 있다 보면 읽는 이의 마음도 훈훈해지곤 한다"고 했다.
그는 원래 외교관을 꿈꿨다. 대학에서 경영학과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외무고시에도 3차례 응시했다. 2009년 외시에서 낙방하고 허전한 마음을 달랠 방법을 찾다가 "지금껏 공부한 영어로 다른 사람을 도와보자"는 생각에 나선 게 편지 번역 봉사활동이었다. 같은 해 뇌종양 판정을 받아 수술을 한 뒤에도 3개월 만에 봉사활동을 재개할 만큼 열심이었다. "당시 자신감을 많이 상실하고 몸도 안 좋았는데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고 삶의 용기를 얻을 수 있었어요."
이제는 30분 만에 편지지 2장을 수월하게 번역하는 베테랑이 됐지만, 남씨는 여전히 "표현 하나를 번역할 때도 상당히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예전에 덴마크에 사는 입양인이 친부모를 만난다고 해서 통역을 맡았는데 유일하게 할 줄 아는 말이 '사랑해 엄마' 한 마디더라고요. 부모 자식 간이지만 서로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는 특수한 상황에서 제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으니 단어 하나 쓸 때도 심사숙고 할 수밖에 없어요."
월드비전의 재택번역봉사단, 해외입양인 통역, 해외입양인 한글도우미 등 다양한 봉사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현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도 '민간 외교관'의 역할은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국제기구에서 여성이나 아동 등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편지 번역 봉사는 평생토록 할 거고요."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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