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원
3억 년의 안개 속에서
누층의 적멸 같은 등불
하나 켜 들고 홀연
돌아오게 된 것
어떤 힘에 의해서
어떤 논리에 의해서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자세
파괴를 두려워하지 않는 성향
그런 것들이 멸족
그것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당신, 측정할 수 없는
쓸쓸한, 바람의 붓질로 생긴
당신 그리고 나의 뼈
당신의 시선이
불러일으키는, 공포
심연 속으로 빠르게
순응하는 공룡의 외로움
어그러진 정합
나의 소멸은 장엄했나
어떤 관념은 슬픔
● 플라테오사우루스는 3억 년 전쯤에 살았던 거대한 공룡의 이름입니다. 덩치는 무지 컸지만 당신이 곁에 있다 해도 해치지는 않았을 거예요. 초식동물이거든요. 물론 우린 멸종한 그들을 만날 수도 없으며 그들이 멸종했다는 사실도 이상하게 느끼지 않습니다. 거대한 서사나 이념이 모두 사라져 버린 시대에 큰 것들의 멸종은 특별한 일이 아니죠.
감은 1억 5천만 년 전의 식물이라고 합니다. 그때에도, 오늘날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것과 똑같은 모양과 풍미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답니다. 이렇게 변치 않고 살아남은 감의 철학 대신 플라테오사우루스 철학을 노래하는 시인의 저의는 뭐죠? 그 저의는 잘 모르겠지만, 그의 슬픔만은 느껴집니다.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