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대학원에 재학 중인 공학도 김재우(24)씨와 신인 배우 고명진(22)씨가 지난 12일 경기 용인의 이엑스알(EXR) 팀106 캠프에서 만났다. 누가 봐도 어색한 조화지만 레이싱 얘기가 나오자 금세 마음의 거리가 좁혀졌다. 레이싱팀 팀106에서 진행하는 슈퍼루키 프로젝트에 지원한 둘은 150대1의 경쟁률을 뚫어야만 프로레이서의 꿈을 이룰 수 있다. 순수한 열정 하나로 도전장을 내민 그들의 꿈을 들여다봤다.
대형사고도 스피드 본능 막지 못해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 중인 김씨와 드라마 '당돌한 여자'로 연기자의 첫 발을 내디딘 고씨는 핸들을 잡자마자 대형사고를 당했다. 일반인 같으면 간이 콩알만 해질 텐데 여전히 레이서를 꿈꾸고 있으니 '스피드 본능'이 놀라웠다. 김씨는 "차를 사기 위해 2년간 계획을 세워 악착 같이 돈을 모았다. 하지만 차를 산 지 이틀 만에 큰 사고가 났다"며 "차가 가드레일을 들이받아 다 망가졌다. 몸이 아픈 거보다 어떻게든 차를 움직이게 해달라고 애원했던 게 기억난다"고 털어놓았다.
고씨는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 사거리에서 5중 충돌 사고를 당한 것. 그는 "사거리 도달할 지점에서 신호가 바뀌어 직진했다. 옆에 버스가 정차해 있어 좌측에서 신호를 위반하고 오는 차를 볼 수 없었다"며 "차가 충돌하기 전에 이미 기절해 중상은 피했지만 앞 차체가 모두 날아갔다. 에어백까지 터져 주변에서는 내가 죽은 줄 알았다"고 아픈 과거를 꺼냈다. 하지만 당시에도 고씨는 신체적인 고통보다는 폐차된 차량으로 인해 눈물을 흘렀다고.
선천적인 '레이싱 DNA'
어릴 때부터 카레이싱을 동경했던 둘은 '레이싱 DNA'를 타고 났다. 운전면허를 딴 뒤 친오빠와 함께 차 동호회에 자주 나갔던 고씨는 드래그의 고수. 고씨는 2011년 처음으로 출전한 2,700cc급 코리아 GT 클래스에서 덜컹 2위에 입상했다. 그는 "운이 좋아서 2위를 했지만 특별한 경력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난해 3차례 아마추어 대회에 참가했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프로 레이싱은 출전 경비가 많이 들어 개인이 부담하기가 벅차다"며 루키 프로젝트 지원 이유에 대해 덧붙였다.
김씨도 2008년 태백에서 열린 1,600cc 타임 트라이얼 대회에서 일을 냈다. "서킷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주위에서 망신만 당할 거라고 놀렸다. 하지만 날씨가 추웠던 게 호재로 작용하면서 우승했다"며 첫 레이스 일화를 공개했다. 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내려간 탓에 성능 좋은 차들의 타이어도 무용지물이었다고. 서킷이 얼어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없었던 환경에서 김씨는 '무(無)튜닝' 세라토로 이변을 일으켰다.
공도보다 서킷이 오히려 안전
'몇 ㎞까지 밟아 봤나.' 레이서 지망생 김씨와 고씨가 지금껏 가장 많이 받아본 질문이다. 김씨는 "태백 서킷에서 185㎞까지 속도를 내봤다. 그러나 공도(공공도로)에서는 속도가 중요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레이서 지망생이라면 스피드에 대한 로망이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무너진 순간. 고씨도 "공도에서는 오히려 천천히 달린다. 서킷을 경험한 뒤로는 평소 주행 때는 스피드보단 안전운전에 신경을 쏟는다"고 설명했다.
스피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서킷이 오히려 공도보다 안전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서킷에서는 공도보다 돌발 변수가 적는다는 게 이유. 김씨는 "서킷에서는 모든 선수들이 위험성에 집중하면서 달리다 보니 사고가 적다. 하지만 공도는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올 수 있는 등 변수가 많아 속도보단 안전운행에 신경을 쏟아야 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상적인 레이서에 대한 생각은 달랐다. 고씨는 "연기활동과 레이싱을 병행하는 이화선 선배처럼 되고 싶다"며 "전복 사고가 있었는데도 손 흔들고 아무렇지 않게 걸어 나오는 모습이 '프로'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레이서는 관객에게 보여주는 모습도 중요하다"며 존경심을 표했다. 김씨는 "전문적인 레이서가 되지 않더라도 공학도다 보니 매카닉 쪽으로 기여하고 싶다"며 "아일톤 세냐 등 레이싱 도중 죽은 드라이버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이들의 사고로 인해 상용차의 설계가 달라지기도 했다. 카레이서의 사회적인 가치도 알리고 시스템 정착으로 후배들에게 보다 나은 환경을 물려주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15일 열린 면접테스트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둘은 28, 29일 서킷 실전테스트를 통해 슈퍼루키 톱2에 도전한다. 4월3일 팀106 출정식에서 슈퍼루키 2인이 공개될 예정이다.
용인=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