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씨가 차명 상속자산을 돌려달라며 동생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낸 7,000억원 대의 소송와 관련해 세간의 궁금증은 점점 더 증폭되고 있다. 국내 최대 재벌가의 형제 간 재산분쟁이란 점 자체도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소재이지만, 소송 배경과 내용 그리고 전망까지 미스터리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CJ는 몰랐나
이맹희씨는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아버지다. 삼성가의 장손그룹인 만큼, CJ 역시 삼성에 섭섭한 게 많다. 1994년 계열분리부터 작년 대한통운 인수까지 불편한 감정이 노출된 적도 많다. 만약 이번 소송이 이맹희씨의 개인적 결정이 아니라면, 개인적 결정이라도 CJ그룹의 지원 혹은 묵인 하에 이뤄졌다면 상황은 훨씬 복잡해진다.
물론 CJ측은 이번 소송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말하고 있다. CJ 관계자는"이맹희씨와 이재현 회장 간 관계 자체가 소원하기 때문에 그룹에선 이맹희씨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며 "소송도 이맹희씨가 직접 법무법인을 선정하고 개인적으로 추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에선 "(오너의 아버지 일을) CJ가 몰랐을 수는 없다"는 반응이다. 한 소식통은 "2008년 삼성 비자금사건으로 차명계좌가 폭로된 뒤 이맹희씨가 자기 지분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는 소문이 많았다. CJ가 이를 몰랐을 리는 없지 않는가. 지원하지는 않았더라도 알고는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측 역시 다소 미심쩍은 눈으로 CJ를 바라보고 있다.
차명주식은 얼마나 되나
이맹희씨 측은 소송을 통해 반환을 요구한 삼성생명 주식(824만주)외에, 자신이 돌려받아야 할 삼성전자 주식을 57만주로 추정했다. 정확한 차명주식수를 알지 못해 삼성전자 주식에 대해선 20주만 상징적으로 반환 요구했지만, 소송대리인인 법무법인 화우 측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에게로 실명전환된 삼성전자 차명주식이 250만주 가량되며 이를 상속권자인 형제들(4명) 숫자로 나눠 보면 이맹희씨의 몫은 57만주 정도 된다는 것이다.
이맹희씨 측은 지난해 6월 삼성 측이 삼성전자 주식 250만주가 차명전환된 사실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삼성 관계자는 "그 내용에 대해선 아는 바 없다"고 말했다.
화해할까, 끝까지 갈까
삼성은 CJ를 통해 이맹희씨에게 소송취하를 요청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CJ측도 좀처럼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CJ관계자는 "(이맹희씨에게) 쉽게 아무나 가서 화해를 권할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 있다"고 말했다.
이맹희씨도 현재까지는 소송을 거둬들일 생각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화우의 한 변호사는 "원고측에서 주식을 꼭 돌려받아야겠다는 입장이 완고하다"고 말했다.
이맹희씨 측은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점에 무게를 두면서 승소를 자신하고 있다. 상속권 침해 회복을 요구하는 이번 소송은 상속행위 발생일로부터 10년, 이를 상속권자가 알게 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하도록 되어 있다. 이맹희씨 측은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차명주식을 실명전환한 것이 2008년10월, 이맹희씨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지난해 6월 삼성에서 CJ측에 보낸 상속재산 분할관련 소명서였기 때문에 아직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법조계의 일반적 시각은 이건희 회장 측의 우세를 점치고 있다. 변호사 A씨는 "(아무리 경영권에서 멀어져 있었다해도) 거대재벌 일가인 원고가 차명주식 존재를 몰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며 "원고가 차명 주식이 있는 걸 몰랐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사 B씨는 "재벌에 대한 반감 등 사회적 정서도 판결에 적용이 된다"며 "특히 상속회복 청구는 지금의 권리관계를 뒤집는 것이어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법조인들은 서로에게 부담이 되는 소송인 만큼 어떤 형태로든 조정가능성을 예상하고 있다. 1년 이상이 소요되는 긴 싸움인 만큼 이맹희씨가 삼성 측과 협의를 통해 소송을 취하할 수도 있고 법원이 조정할 수도 있다는 것. 법원 조정의 경우 통상 소송액의 절반 내지 30%를 원고(이맹희씨)가 받게 된다고 법조계 인사들은 전하고 있다.
또 만에 하나 이맹희씨가 승소해 삼성생명 삼성전자 주식을 확보하더라도 현 삼성 지배구조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맹희씨가 요구한 824만주를 모두 내놓더라도 이건희 회장(4,151만주, 20.76%)과 에버랜드 계열사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이 40% 이상이어서 경영권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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