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차 사법시험(18일)을 나흘 앞둔 14일 저녁 서울 관악구 대학동(옛 신림9동). '신림동 고시촌'이란 별명이 붙은 주택가는 여전히 고시원과 독서실이 빼곡했다. 고시촌 초입의 H법학원에선 막바지 문제 풀이 강의가 한창이다.
그러나 주택가 아래 큰길로 나오면 사정은 달랐다. 고시생 대상 식당과 PC방 등이 있던 자리엔 커피전문점과 주점이 들어찼다. 이곳에는 후줄근한 차림의 고시생 대신 왁자지껄하는 젊은 대학생 직장인이 가득했다. S공인중개사 대표는 "재작년쯤부터 저렴한 주거지를 찾는 직장인이 늘면서 이 동네에서도 원룸 수요가 커지고 있다"며 "고시원을 원룸으로 개축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전했다.
신림동의 고시촌 시대가 저물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단계적으로 시행된 사법시험 선발 인원 확대를 계기로 전성기를 누렸지만 3년 전 정부의 사법시험 폐지 결정 이후 빚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15일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사법시험 지원자 수는 1만4,035명으로 지난해(1만9,536명)보다 30% 가까이 줄었다. 사법시험 지원자가 1만5,000명 아래로 내려간 건 1990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이다. 신림동 고시촌에 거주하는 고시생 수도 급감했다. 전국고시원협회 추산에 따르면 현재 2만명이 채 못 된다. 전성기인 2000년대 초반에는 5만명에 육박했다.
신림동 고시촌의 쇠락은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도입되면서 예견된 일이다.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는 1,000명 안팎에서 2010년 814명, 지난해 707명으로 줄었고, 올해는 500명까지 감축된다. 또 온라인 강의가 보편화하고 어디서나 입시 정보를 구할 수 있게 되면서 고시생들이 더 이상 신림동의 기업형 고시학원이나 고시전문서점을 중심으로 촌락을 이뤄야 할 이유도 약해졌다.
교통 여건도 또 하나의 요인이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서울시가 올해 11월쯤 착공하는 '신림선 경전철'(여의도~서울대)이 개통되면 직장인 유입이 더 늘어날 것"이라며 "이 지역 교통 상황이 열악해 고시생들이 고시촌과 집 등을 오가기보다 고시촌에 기거하는 식이었는데 이제는 상황이 바뀐 셈"이라고 설명했다.
고시생이 떠난 자리에 직장인들이 들어서고 있다. 최근 1~2인 가구가 늘어나고 전세난 등이 겹치면서 값싼 방을 찾는 회사원 수요가 늘어서다. 고시원 관계자는 "혜택이 많고 정부 지원도 받는 고시원으로 인허가를 받아놓고 주방시설과 화장실을 갖춘 원룸 식으로 개조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관악구 내 고시원 수는 2009년 말 652개에서 지난해 말 942개로 급증했다. 이러다 보니 고시원 업주끼리 경쟁이 과열돼 손실도 난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지는 바람에 공실률이 20~30%에 이른다고 한다. 조형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는 "국가고시 제도의 변화란 외부의 힘에 신림동이란 공간의 성격이 변한 셈"이라며 "새 대학동은 대학과 고시촌, 주민과 상인 공동체가 상호 소통할 수 있는 공적 공간으로 조성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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