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도시' 바티칸이 폭로와 음모에 휩싸였다. 지난달 바티칸의 부패를 고발하는 편지가 공개된 데 이어 최근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암살설을 담은 기밀문서가 유출되면서 '바티칸판 위키리크스 사태'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마키아벨리적 술수를 연상시키는 사태의 배경에는 차기 교황 선출 등을 둘러싼 권력 다툼이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14일 전했다.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가 교황 등에게 보낸 편지가 지난달 26일 이탈리아 방송 La7에서 공개된 것이 사태의 발단이다. 2009년부터 2년간 바티칸의 살림을 담당하는 부지사 자리에 있었던 비가노 대주교는 편지에서 박물관, 건물, 거리 관리와 관련한 부패를 고발했다. 그는 20만유로(약 3억원)에 살 수 있는 예수탄생 그림을 55만유로에 구입했으며 부실한 자금 관리로 190만유로의 손실을 보았다고 밝혔다.
더 놀라운 폭로는 10일 나왔다. 이탈리아 일간 일 파토 쿼티디아노가 12개월 내 교황 암살 시도 가능성을 담은 교황청 기밀문서를 보도한 것이다. 은퇴한 콜롬비아 추기경 디리오 카스트라욘 오요스가 지난해 12월 30일자로 보낸 문서는 이탈리아 팔레르모 대주교인 파올로 로미오가 지난해 11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교황에 대한 암살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같은 사태는 교황청의 2인자인 국무장관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을 둘러싼 권력 투쟁에서 비롯됐다고 외신은 분석했다. 베르토네 추기경은 교황의 최측근으로 외교무대 경험이 없는데도 2006년 요직인 국무장관에 올랐다. 강압적 태도로 다른 성직자들과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진 그는 지난해에는 내부 비리를 고발하는 편지를 보낸 비가노 대주교를, 부지사 임기가 남았는데도 미국 주재 바티칸 대사로 보냈다.
바티칸의 고위 성직자는 "모든 폭로는 베르토네를 겨냥한 것으로 그의 사임을 바라는 사람들이 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최근 움직임은 전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 시절 국무장관이었던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의 암묵적 지지 속에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84세인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최근 부쩍 노쇠한 것을 들어 차기 교황 선출과 연관 짓는 시각도 있다. 바티칸에서는 18일 새 추기경 22명에 대한 서임식이 열리는데 이 중 18명은 만 80세 이하로 교황 선출 비밀회의(콘클라베)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중 7명은 이탈리아 출신이고 이 7명 중 6명은 베르토네 추기경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출신이 450여년 동안 독점하다 두번 연속 타국 출신에게 자리를 내준 교황직을 되찾아오기 위해 베르토네 추기경이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최근의 기밀 유출 등은 이런 움직임에 대한 반발이라는 것이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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