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시인이자 르포 작가인 송기역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허세욱 평전 <별이 된 택시운전사> , 요셉 조성만 평전 <사랑 때문이다> 와 무너져가는 4대 강을 기록한 <흐르는 강물처럼> 등의 책을 썼고, 최근에는 박종철 열사 아버지인 박정기 선생을 인터뷰해 일간지에 기고하고 있다. 아직 한국에는 생소한 르포문학이라는 장르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다 르포작가로서 가장 먼저 갖춰야 할 점이 뭐냐고 물으니 그는 "인권 감수성"이라고 대답했다. 한국에서는 인권도 생소하고 감수성도 생소한데, 그 두 가지를 합친 인권 감수성이란 게 도대체 무엇일까. 송 작가는 평전을 쓰기로 하고 초고까지 다 쓴 다음에 인터뷰이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책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연락이 왔을 땐 그 동안의 수고를 생각지 않고 단칼에 인터뷰 원고를 버린 셈 치기로 하고 포기했다고 한다. 흐르는> 사랑> 별이>
어디에 소속된 기자라든가 자기 수고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애써서 쓴 원고를 통째 버리기는 힘들 것이다. 인터뷰이, 그러니까 인터뷰 당하는 이의 인권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그는 그런 결단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게 그가 말하는 인권 감수성이었다. 다른 사람의 인권을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 자칫하면 내가 쓴 글 한 줄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부연 설명이었다. 르포를 쓰지는 않지만 가끔 사람에 대한 글을 쓰는 입장에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우리나라에 인권 감수성이라는 말은 참 낯설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서글퍼졌다. 감수성은커녕 인권이라는 말도 참 낯설다.
얼마 전 대구에서 있었던 중학생 자살 사건도 그렇고, 꾸준히 문제가 되고 있는 왕따 사건도 인권 의식은커녕 인권 감수성, 내가 저 사람의 입장이 되었을 때 어땠을까 하는 감수성이 없는 것이 근원이지 싶다. 괴롭히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아마 크게 괴롭힌다는 의식이 없었을 것 같다. 괴롭히는 애들 입장은 다 그렇지 싶다. 우리 같이 재미있게 놀았을 뿐인데, 그냥 짓궂게 굴었을 뿐인데, 뭐 그런 것. 인권 감수성이란 게 그럴 때 참 애매하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웬 남자가 특정 부위를 계속 들이밀고 비벼 대서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2호선 사당, 교대 역을 지나느라 복잡해서 그렇겠지 싶어 읽고 있던 책에 열중하느라 잘 몰랐는데, 흘끗 보니 지하철이 드문드문한데 이 남자가 바짝 붙어서 그러고 있는 거였다. 그런데 이것도 참 뭐라고 하기가 애매한 게 문제다 싶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되는지 내가 잘못 느낀 건지 잘 모르겠어서 일단 보던 책을 탁 덮고 빤히 봤더니 남자는 다음 정거장에서 바로 튀어나가듯 내렸다. 그 모습을 보자 아, 성추행 맞구나 싶었다. 인권 문제는 너무 이렇게 애매하다. 내가 저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는 연습이 인권 감수성을 키우는 연습인 것 같은데, 우리는 참 남의 입장이 되는 연습을 못 한다. 어려서부터 못 배우고 큰다. 인터넷에서 남의 이야기를 보고, K양이 어떻고 M군이 어떻고 이니셜 놀이를 할 때 킬킬거리고 재미있어하면서도 여기에 인권 생각은 하지 않는다. 쟤들은 공인이니까, 즉 돈을 많이 버니까 이 정도는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이 특별히 이기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냥 남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나는 즐겁게 같이 놀았다고 느꼈지만 저 아이 입장에서는 왕따, 나는 재미있는 농담이라고 했지만 저 여자 입장에서는 성희롱, 인권 감수성이란 나만 즐거우면 다 즐겁다고 생각해 버리는 거구나, 나만 괜찮으면 다 괜찮은 줄 아는 거구나, 이런 생각을 새삼 했다. 그래서 첫 번째 결심으로 남 얘기 하면서 시시덕거리지 않기로 했다. 연예인이든, 아는 사람이든, 일단 그것부터 시작해 볼까 한다. 남의 뒷말 안하기부터 시작하면 상태가 훨씬 나아질 것 같다. 트위터 같은 SNS가 발달하면서 남의 뒷말 하기가 너무 편하고 좋아져서, 이걸 줄이는 건 사실 꽤나 힘들겠지만. 사실 이것만 안 해도 우리 삶의 저열함이 조금은 나아지지 싶다. 나부터 입 좀 다물어야겠다.
김현진ㆍ에세이스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