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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건보료의 8%가 리베이트로 나가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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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건보료의 8%가 리베이트로 나가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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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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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혈증 치료제인 심바스타틴의 국내 가격은 830원대다. 우리보다 소득수준이 높은 스웨덴에서는 80원대로 우리보다 10배 이상 싸다. 정부는 4월부터 약가를 평균 14% 일괄 인하할 예정인데, 이는 만시지탄이다. 그러나 제약회사들의 반발이 거세고 소송전도 예상돼 정부가 또 다시 물러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보건복지부는 2년 전 약가를 20% 일괄 인하해 건강보험 약제비를 1조원이상 절감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제약사의 압력을 수용하다 보니 실제 가격 인하된 품목은 극소수였다. 정부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약값을 인하해야 하는 이유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건강보험 재정 지출에서 약제비는 30% 정도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1.7배 높다. 높은 약가는 고스란히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돼왔다. 건강보험이 강제보험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비싼 약가를 피해갈 방법이 없었다.

건강보험 의약품 시장은 연간 20조원 규모이며, 매년 두 자리 성장을 해왔다. 그 덕분에 국내 제조업이 어려움을 겪을 때도 제약산업은 경쟁의 무풍지대였다. 그 뒤엔 건보료를 납부하는 국민의 희생과 부담이 항상 따라다녔다. 공정거래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약가의 20% 정도가 제약사들이 의사와 약사에게 주는 리베이트(뇌물)라고 한다. 따라서 연간 4조원 즉, 건보료의 8%에 해당하는 리베이트를 국민들이 건보료로서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높은 약가는 건보재정을 압박하는 요인이 됐고, 국내 제약산업의 경쟁력을 취약하게 만들었다. 보험약가는 한번 결정되면 시장상황과 상관없이 일정기간 유지되기 때문에 국내 제약기업은 굳이 신약개발이나 수출경쟁보다는 안전한 리베이트 영업을 선호했고, 기술개발은 뒷전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1위 제약사의 매출액은 국내1위 화장품회사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게 악화된 데에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단순 복제약 가격을 특허 제품의 70~80% 수준으로 보상해줬다. 외국의 30~40% 수준과 비교할 때 너무 차이가 크다. 그만큼 높은 약가를 지금도 국민들이 부담하고 있다.

합리적인 기업이라면 저품질에 고가격을 보장해주는 건강보험시장을 두고 불확실한 연구개발이나 경쟁이 극심한 해외시장에 나설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는 정상적인 기업이 영업할 수 있는 경영환경이 아니다. 과거 제약산업의 성장에 기여했던 고가격 정책이 이제는 독이 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도 일찌감치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약제비 관리 대책을 도입했지만, 그 때마다 제약사의 반발에 밀려 백약이 무효였다. 정부는 6~7가지의 약가관리정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시행해왔다. 그런데도 약제비 관리가 안되는 것은 무늬만 대책이지 실상은 있으나 마나 한 정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4월 약가 인하는 제약사의 반발 강도로 짐작컨데 이전에 비해 확실히 약발이 있는 정책인 듯하다. 지난 30년간 고가격 하에서도 연구개발을 외면했던 제약사들이 이제 와서 약가를 인하하면 연구개발을 못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차라리 가격 인하하고, 품질 좋은 복제약이라도 제대로 만들라고 말하고 싶다. 신약의 연구개발에 성공하면 특허와 독점판매로 보상되니 문제될 건 없다.

실패를 보상하는 것은 성공을 처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복제약 가격을 비정상적으로 높게 유지하면 신약개발의 동기가 나타날 수 없다. 이번 약가 정책이 성공하면 수십년간 난맥상을 보였던 약가제도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고 우량기업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게 될 것이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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