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갑작스러운 봄기운에 싱숭생숭 조금, 그러하였다. 옷 껴입기 바빴던 내가 너무 껴입었나 싶어 카디건 하나를 벗어 다시금 옷걸이에 걸 때, 새 계절은 그렇게 오는 모양이다. 홍대 거리로 쏟아져 나온 쾌활한 웃음 속 젊디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저들끼리 뭐라 귀엣말을 해가며 트렁크를 질질 끌고 지나가던 이들 가운데 유독 중국인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양손 가득 쇼핑백에 백을 보태느라 분주하던 그들 손에 가장 단단히 붙들린 것이 있었으니 그건 다름 아닌 여행 가이드였다. 많은 종수는 아니나 여행 관련 서적에 관심이 많아 그래도 꽤 만들어온 탓에 혹 훔쳐올 만한 소스인가 하여 절로 쏠렸던 편집자로서의 내 욕심.
5대양 6대주를 넘나들며 세계 곳곳의 관광지를 넘어서서 구석구석 숨은 골목까지 샅샅이 쑤시고 다니는 요즘의 우리들, 가본 데보다 안 가본 데가 더 적다는 걸 자랑하며 이국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과 글 속에 자신을 드러내는 요즘의 우리들, 그리고 그런 그들 속의 바로 나.
그런데 어느 날 내 집 뒷산에 올랐다가 이곳에 고려시대부터 자리했던 절이 있다는 걸 알았다. 3년 넘게 살아온 집, 그것도 유적을 코앞에 두고도 몰라본 무관심이라니. 내 집 마당도 살피지 못하면서 남의 집 마당 쓸 궁리나 하고 다녔다는 반성도 잠시, 그래도 희망인 건 국경을 넘나들며 글로벌적으로 배운 비질 솜씨라고나 할까.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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