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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인터뷰] 뮤지컬 연출가 이지나·배우 정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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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인터뷰] 뮤지컬 연출가 이지나·배우 정선아

입력
2012.02.15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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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나 "어느 예술가가 서양원작 하청업자에 머물고 싶겠어요"

공연계의 '일요일'인 월요일로 약속을 잡았건만 미안함을 지울 수 없었다. 2012년 한국 뮤지컬계에서 가장 바쁜 여배우와 연출가의 소중한 휴일을 빼앗은 건 아닌지.

2001년 뮤지컬 '록키 호러 쇼'로 연출가로 데뷔한 이지나(48)씨는 '그리스' '헤드윅''바람의 나라' '밴디트' '대장금' 등 뮤지컬과 '버자이너 모놀로그' '메이드 인 차이나' '거미 여인의 키스' 등 연극을 만든 공연계의 대표적인 스타 연출가다. 특히 지난해 '광화문 연가' '아가씨와 건달들' '에비타' 등 1년에 한 편 맡기도 힘든 객석 1,000석 이상의 대형 뮤지컬을 잇따라 연출한 그는 올해도 8일 개막한 '광화문 연가', 3월 2일 시작하는 '서편제' 재공연 준비로 연초부터 정신 없이 지내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데뷔한 정선아(28)씨는 뮤지컬 여배우 가운데 최고의 티켓파워를 자랑한다. 정씨는 현재 이씨가 연출한 '광화문 연가'에 리사와 함께 여주인공 여주로 출연 중이며, 지난달 말까지는 이씨의 또 다른 연출작이자 공연의 절반 이상을 여주인공이 끌고 가야 하는 '에비타'에 출연했다.

요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두 사람을 13일 서울 한남동 공연장 블루스퀘어에서 만났다. 지난 10년 간 뮤지컬에 푹 빠져 지낸 이들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실력 외에도 때로 상대를 당황케 할 만큼 솔직한 화법의 소유자라는 공통 분모가 있다. 하지만 "몸에 뮤지컬이란 피가 흐른다"고 할 정도로 지극한 뮤지컬 사랑이 이들을 이어주는 가장 질긴 끈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선 서로를 엄마와 딸로 부르는 사이이기도 하다.

_평소 엄마와 딸로 부르는 두 분이 정말 닮은 것 같기도 하네요.

이지나="내가 선아한테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얘가 어린 시절부터 나랑 참 비슷한데, '네가 나 어릴 때보다 더 예쁘고 더 똑똑하다'고. 물론 나도 배우 하던 시절에는 예뻤어요. 몸매는 별로였지만.(웃음)"

_선아씨의 '광화문 연가' 출연은 의외였어요.

정선아="사람들이 저한테 다들 미쳤다고 했죠. '에비타'까지 한 네가 왜 굳이 여주인공의 비중도 크지 않은 '광화문 연가'에 출연하느냐고. '에비타' 끝난 후에는 해외여행이나 하면서 쉬려던 참이었어요."

_창작 뮤지컬에 힘을 실어달라는 엄마(이지나)의 뜻을 따르게 된 건가요.

정="처음에는 나에게 왜 이러느냐고 거부했어요. 나한테 청순한 여주 역할이 어울리기나 해요? 제가 스스로 즐거움을 못 느끼면 관객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없는 거잖아요."

이="선아가 청순하고 가련한 역할에 거부감이 좀 있어요. (정씨가 "배우니까 할 수는 있는데 내가 재미가 없다"며 얼른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 큰 무대를 채워야 하는 '에비타'를 연기한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해도 재미가 없을 거라고 설득했죠. 그럴 바에는 창작 뮤지컬에 힘을 보태 달라고."

_그래서 선아씨가 편지로 출연 결심을 밝혔다면서요.

정="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나는 항상 힘 있는 자가 광야의 초인이 되어 나타나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고. 그래서 '나에게 날개를 달아 준 엄마한테 딸내미가 폭풍 바람을 불어드리겠다'고 썼죠. 내가 광야의 초인 같은 존재까지는 못 되겠지만."

이="전 정말 감동했어요. 솔직히 선아는 그 누구보다 외국 작품의 라이선스 공연이 잘 어울리는 배우예요. 본인도 그걸 잘 알고. 10대 시절부터 '뮤지컬 키즈'로 자란 아이라 서양식 창법과 연기가 완전히 몸에 배어 있거든요. 그런데 고 이영훈 작곡가의 곡으로 만든 '광화문 연가'에서 한국식 발라드 창법으로 노래하려니 정말 힘들 거예요."

정="사실 에비타를 연기할 때는 체력 소모가 많은 작품인데도 잠도 잘 자고 감기 한 번 걸린 적 없었는데 이번 공연은 너무 힘들어요."

2002년 '렌트'의 여주인공 미미로 데뷔한 정선아씨가 그간 출연한 창작 뮤지컬은 '해어화'(2007) 단 한 편뿐이다. 어린 시절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보낸 그는 "나는 워너비 아메리칸이었다"고 농을 던질 정도로 서구 문화에 친숙하다. 그런 그가 창작 뮤지컬에 출연하도록 설득한 이지나씨도 실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양 예술의 우수성을 과신해 왔던 연출가다. 배우로 활동하다 30대 초반 영국으로 건너가 연출을 공부한 이씨의 대표작 중엔 해외 라이선스 공연이 많다. 하지만 '서편제' 연습에 한창인 요즘 지인들과의 술자리나 SNS 등을 통해 입만 열면 창작 뮤지컬 찬가를 부르는 그다.

_선아씨도 시기가 좀 당겨진 것뿐이지 언젠가는 창작 뮤지컬에 출연할 계획이 있었겠죠?

정="전혀 아니에요. 서양 가발 쓰고 신나게 잘 놀고 있었는데 제가 왜요? 제가 창작 뮤지컬에 출연하는 건 외국인이 한복 입은 느낌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나도 스무 살 때 '난 사고가 거의 서양 사람인데 왜 한국에 태어나 이 自萱訣?라고 생각하던 사람이에요. 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뼛속 깊이 서구 사대주의에 젖어 있지 않았던가요?"

_창작 뮤지컬이 중요하다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이="2009년에 '오페라의 유령' 협력 연출로 일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죠. 흔히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아이폰을 창조했다고 생각하지 애플의 각 제품이 중국의 어느 공장에서 생산됐다고 콕 집어 기억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마찬가지로 외국 원작의 뮤지컬 작업은 배우들은 명배우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몰라도 창작자들은 하청업자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예술가가 하청업자에 머물고 싶겠어요. 라이선스 공연이 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현재 9 대 1 수준인 라이선스와 창작의 비중을 적어도 6 대 4까지는 만들어야 건강한 뮤지컬 산업화의 기반이 마련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선아처럼 실력 있는 배우들에게도 자꾸 힘을 실어달라고 설득하는 거죠."

정="저는 좀처럼 창작 뮤지컬에 출연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냥 '열심히들 하세요, 그래도 저는 라이선스가 좋아요' 그런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이지나 선생님의 설득도 있었고 정치성을 띤 '에비타'를 하면서 전보다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큰 계기가 됐죠. 일단 창작 뮤지컬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게 됐고, 주변에서 티켓파워 1위라고 이야기해 주는 지금 같은 때에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기보다 어떤 작품에 의식 있게 참여하는 것에 의의를 둬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광화문 연가'를 하면서 내 연기에 스스로 느끼는 만족도 이상으로 관객이 큰 만족을 얻어가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도 생겼죠."

이="아, 내 딸이 이렇게 똑똑해, 정말 미치겠어.(웃음) 결국 한국 뮤지컬이 상업적으로 성공하게 되면 고용 창출의 효과까지 얻게 되는 점이 중요해요. '오페라의 유령' 한 작품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고 있나 생각해 보세요. 전 50대를 코앞에 두고 이런 사실을 깨달아 좀 속상하기도 해요. 지금 하는 창작 작업들을 40대 초반에만 했어도 한국 뮤지컬 시장이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지 않았을까요? 요즘 몸이 말을 안 들어서 자꾸 화가 난다니까."

_'광화문 연가' 관객 중 중년 비중이 높은 것도 선아씨에게는 특별한 경험일 것 같아요.

정="맞아요, '에비타' 때부터 느낀 거지만 그간 전 골목대장,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죠. 중년 관객이 많은 공연은 젊은 관객처럼 확 끓어오르는 박수갈채는 없어도 무대 인사를 할 때마다 정말 사랑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40, 50대 이상 되신 관객들이 처음 보는 제 이름을 기억하고 돌아가실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문화선진국이라고 생각해요."

20, 30대 여성 관객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한국 뮤지컬계의 스포트라이트는 몇몇 남자배우에게 집중돼 있다. 쌓아온 공에 비해 출연료나 미디어의 관심 등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는 여배우와 연출가는 서운할 듯도 싶지만, 자신감 넘치는 두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이들은 "우리는 일등이니까 신경 안 쓴다"고 했다.

_뮤지컬팬의 관심이 남자배우들에게 치우쳐 있는 게 서운하지 않나요?

정="아니요, 그런 생각 안 해요. 너는 너, 나는 나니까. 그리고 미안하지만 '그래 돈 많이 받아, 하지만 넌 부족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안 받아요. 솔직히 제가 실력 인정하는 남자배우가 몇 되지도 않고."

_인정하는 배우는 대표적으로 누가 있나요?

정="일단 (조)승우 오빠랑 JYJ 시아준수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그냥 스타니까 예외로 하고. 독특한 음색을 가졌고 제가 갖고 있지 않은 겸손함과 좋은 성격까지 갖춘 박은태씨를 높게 평가해요. 연기에 대한 분석도 열심이고."

이="은태는 우리 창작자들도 '쟤가 성공해야 이 사회의 정의가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배우죠.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간성까지 훌륭해서."

_선아씨의 실력은 늘 한결 같아서 아무리 뛰어난 무대를 보여줘도 화제가 안 돼요. 당연하게 받아들이니까.

정="저는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살기 때문에 주목 받지 않아도 상관 없어요. 난 잘하니까. 관객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요즘에야 안 거지 몇 년 전만 해도 그냥 내 즐거움을 위해 무대에 섰어요. 내가 좋아하는 내 꿈 이루면서 돈도 벌고, 연예인과 달리 내가 만나고 싶은 친구들 자유롭게 만나며 연애도 하는 최고의 삶이라고 생각하는데요?"

_스스로 국내 최고의 뮤지컬 배우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정="네, 죄송한데 전 10년 동안 그랬어요."

이="선아는 '잘해야 해'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는 게 아니고 정말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거예요.(웃음)"

_우리나라 정서상 잘난 척 한다고 느낄 수도 있는 발언인데요?

정="잘난 척까지는 안 가요, 제가. 아, 그렇게 생각하시는구나.(웃음) 하긴 저처럼 표현하는 사람이 사실 없죠. 그런데 뭘 그렇게 어렵게 살아요? 그냥 나는 그래요. 그래도 요즘은 부모님께 받은 좋은 악기인 내 목소리를 어떤 새로운 방식으로 관객에게 보여줘야 할까 고민도 해요. 내가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해도 관객들이 찾아주지 않으면 집에서 혼자 노래해야 할 텐데, 그건 재미 없잖아요."

_스스로 소수 취향이라고 했던 '이지나식 연출'이 어느새 흥행 뮤지컬의 상징이 됐는데 그래도 관객의 호불호는 많이 갈리는 것 같아요.

이="요즘 호불호 갈리지 않으면서 흥행되는 뮤지컬이 있나요? 내 연출 스타일이 싫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결국 마니아 관객의 취향이지 대중의 의견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1년에 딱 한 번 뮤지컬을 보는 관객도 과연 인터넷 예매 사이트에 로그인하고 들어가서 공연 평점을 남길지 의문이거든요."

_연습할 때 직설화법 때문에 상처 받는 배우들은 없나요?

이="'넌 연기는 잘하지만 노래는 좀 부족하니 고쳐 줄래?'하는 말투가 나는 참 안 돼요. 못하는 건 바로 못한다고 해야 직성이 풀리지. 그래도 단점을 정확하게 짚어내니까 처음에는 상처 받다가도 나중에는 고맙다고 말하는 배우들이 많더라고."

정="배우들은 나르시시즘이 강하니까 자기 자신에게 객관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거든요. 선생님 지적에 상처 받는 배우도 있기야 하겠지만 저는 연출가가 직접적으로 배우의 단점을 지적해 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_TV, 영화 등에서 배우 정선아의 이름을 더 알리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정="제안은 종종 오는데 그게 나한테 정말 잘 맞고 뮤지컬에 좋은 영향을 주는 역할이 아닌 이상 하고 싶지 않아요. 나만 생각했다면 여러 가지 했겠죠. 이런 것도 해 볼까, 하는 모험의식이 없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디바라고 말해 주는 뮤지컬 업계가 창피스러워 할 일은 하지 말아야 하니까요."

이="선아한테 영화 출연 제안이라도 들어올라치면 '너는 나의 자존심이야'하면서 제가 막 빌어요, 하지 말라고. 우리 선아는 뮤지컬계의 디바가 돼야 한다고.(웃음)"

_앞으로 어떤 작품을 더 하고 싶은가요?

정="이미 대본을 이것저것 받아놓은 게 많아서 그냥 고르기만 하면 되는데.(웃음) 사실 창작 뮤지컬에 발을 들인 이상 앞으로의 행보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이="선아는 이게 문제인 것 같아. 배우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 안 돼. 네 꿈을 좇아서 외국 작품의 라이선스 공연은 얼마든지 해. 다만 걸음마 단계에 있는 창작 뮤지컬에도 씨를 뿌리는 개척자의 마음으로 가끔 참여해 주면 좋겠다는 거지. 결국 뮤지컬 시장이 커지고 업계가 다 잘 살게 되면 혼자 잘 사는 것보다 훨씬 보람이 있다는 걸 저절로 알게 될 테니까."

_두 분 다 인터뷰에서 은퇴 이야기를 자주 하던데.

정="'박수칠 때 떠나라'고, 서른 다섯 되기 전에 그만두겠다고 말해왔는데, 선생님은 '너 같은 애가 끝까지 남아서 한다'고 하시죠. 뮤지컬은 저한테 첫사랑 같은 존재여서 꼭 배우가 아니라도 스태프나 프로듀서, 제작자로라도 발을 담그고 살 것 같긴 해요."

이="저는 뮤지컬 업계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창작 뮤지컬 대표작을 최소한 세 편 정도는 남기고 은퇴하는 게 꿈이죠. 뮤지컬은 쉰에 그만두는 게 목표라 마음이 급해요. 한국 영화계의 판도를 바꾼 계기가 됐던 '쉬리' 같은 창작 뮤지컬이 빨리 나와야 할 텐데…."

정=" '장희빈'으로 뮤지컬 만들까요, 선생님? 저한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이="그럼 서양 가발 대신 머리에 가체 얹고 연기할래? 넌 뭐라도 머리에 씌워야 안정이 되니까.(웃음)"

정="그럼요, 화려하게 눈요기가 돼야죠."

두 사람의 폭풍 수다는 결국 이렇게 창작 뮤지컬에 대한 고민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채지은기자 cje@hk.co.kr

고경석기자 kave@hk.co.kr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강은정 인턴기자(서강대 신문방송4)

■ 아이돌스타 캐스팅에 대한 다른 생각

속사포 같이 많은 말을 쏟아내면서도 주거니 받거니 서로를 칭찬하며 대부분의 질문에 뜻을 같이 하던 이지나, 정선아씨가 각기 연출가 혹은 제작자, 배우로서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뮤지컬계의 스타 캐스팅에 관한 생각이다.

최근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로 프로듀서로도 데뷔한 이씨는 아이돌 등 스타를 캐스팅하는데 열을 올리는 최근 공연계의 풍토를 이해하는 입장이다. 그는 "현재 2,000명 정도로 추산되는 고정 뮤지컬 관객만으로 시장의 규모를 키우기는 어렵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스타를 캐스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직은 뮤지컬 시장이 너무 작아 특정 관객층을 겨냥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구조가 못 돼죠. '광화문 연가'만 해도 중장년이 공감할 만한 노래와 내용이지만 다양한 계층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아이돌 등 대중스타와 뮤지컬 전문 배우를 고르게 캐스팅했어요. 제작자들로서는 비용 대비 수익을 맞출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하는 차원에서 대중스타에게로 눈을 돌리게 되는 거죠."

특히 이씨는 "시장의 크기만큼 인력의 수준도 높아지는 법"이라며 아이돌 스타의 프로 의식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철저하고 치열한 삶을 사는 아이돌에게서 오히려 뮤지컬 배우들이 배울 점도 많다"며 "무턱대고 아이돌 캐스팅을 비난하기보다 이 같은 제작자의 고뇌를 어느 정도 이해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배우인 정씨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실력 있는 대중스타도 많지만 무턱대고 아이돌 캐스팅을 고집하는 제작자들도 큰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0년 간 뮤지컬만 바라 본 사람으로서 동료 뮤지컬 배우가 대중스타와 더블 캐스트로 역할을 맡아 주목 받지 못하고 묻히는 것을 보면서 유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8년에 '제너두'라는 작품에 슈퍼주니어 멤버들과 함께 출연했는데 슈퍼주니어가 한창 인기가 많던 때였는데도 흥행에 실패했어요. 뮤지컬 배우들의 이해를 바라기 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역할과 스타의 조합을 찾아내는 제작자의 안목이 우선돼야 하지 않나요? 적어도 뮤지컬을 사랑하는 배우들에게 절망은 안기지 않으면서 스타 캐스팅을 해야죠."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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