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 이맹희(81)씨가 14일 동생인 이건희 삼성전자회장을 상대로 7,000억원대의 재산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차명주식으로 되어 있던 본인의 상속분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비운의 황태자' '삼성가의 양녕대군'으로 불리는 이맹희씨의 소송으로 경영권 승계 때부터 누적된 오랜 앙금이 다시 불거지게 셈이다.
이씨는 "아버지가 생전에 제3자 명의로 신탁한 차명재산을 이건희 회장이 다른 형제들에게 알리지 않고 단독명의로 변경했다"면서 "내 상속분에 맞게 주식을 넘겨 달라"고 요구했다.
여기서 말하는 차명재산이란 2008년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 비자금 사건 때 드러난 차명주식. 삼성은 통상 국내 재벌그룹들의 '파킹(Parkingㆍ주식을 타인명의로 보관해놓는 것)'관행에 따라 고 이병철 회장 시절부터 임직원 등의 명의로 주식을 보유해왔는데, 비자금 사건을 계기로 이를 모두 실명전환했다.
이맹희씨가 돌려달라고 한 주식은 ▦이건희 회장이 실명전환하면서 보유하게 된 삼성생명 주식 824만주 ▦삼성전자 주식 20주 및 1억원 ▦삼성에버랜드가 갖고 있는 삼성생명 주식 100주와 1억원이다. 이중 삼성생명 주식만 따져도 7,100억원이 넘는다.
이중 삼성전자 주식은 일부 실명전환된 사실만 확인했을 뿐 정확히 몇 주인지 몰라서 상징적으로 20주만 우선인도를 요구했다. 이맹희씨 측은 삼성전자 주식상속분이 잠정치로 57만주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총 반환요구금액은 1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맹희씨가 소송을 제기한 건 지난해 6월 삼성그룹이 CJ그룹에 보낸 상속재산 분할관련 소명서가 발단이 됐다. 당시 삼성은 고 이병철 회장 유지에 따라 차명재산을 이건희 회장이 소유하기로 했으니 동의해 달라는 내용과 함께 상속권을 주장할 수 있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에 이맹희씨측은 법률자문 결과 상속재산에 대한 협의가 없었고 삼성생명의 차명주식이 명의 변경된 시점이 2008년 12월이어서 소송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갑작스럽게 불거진 재산싸움에 삼성도, CJ도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CJ는 이맹희씨의 아들 이재현 회장이 이끄는 그룹이다.
사실 삼성과 CJ도 해묵은 감정이 남아 있다. CJ의 전신인 제일제당이 1994년 삼성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 될 때도 잡음이 있었고, 작년에는 대한통운 인수를 놓고 감정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양 사는 이번 소송에 대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일이며 회사차원은 아니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물밑 접촉을 통해 원만한 타결을 모색하고 있다. 삼성은 말할 것도 없고 CJ 역시 이번 소송을 부담스러워하며 현재 이맹희씨에 소송 취하를 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맹희씨는 당초 삼성그룹 후계자로 낙점됐으나 경영능력 등의 문제로 이후 고 이병철회장의 눈 밖에 나면서, 1987년 경영권은 3남이었던 이건희 회장에게로 넘어갔다. 이맹희씨는 이후 특별한 직함없이 야인으로 살아왔으며 자서전을 통해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현재는 중국 베이징에 머물고 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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