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19세기 몰락해가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후다. 배우들은 페티코트로 치마를 한껏 부풀린 드레스로 치장했다. 황실의 결혼식과 무도회 등 낯선 유럽의 역사 속 세계가 끊임없이 무대 위에 재현된다.
해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 배우들이 연기하는 라이선스 뮤지컬이 대개 그렇듯 '엘리자벳'은 소재의 이질감이 큰 공연이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중심의 세계 뮤지컬계에서 독자적인 한 축을 구축해 온 오스트리아 빈 뮤지컬의 대표작으로 오스트리아 마지막 황후 엘리자베스 폰 비텔스바흐(1837~1898)의 극적인 삶을 연대기 형식으로 담았다.
9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개막한 뮤지컬 '엘리자벳'에 대한 관객 반응이 뜨겁다. 1992년 빈 초연 후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헝가리 등 유럽은 물론 일본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검증된 콘텐츠라지만 소재의 생경함을 생각하면 다소 뜻밖이다.
비결은 한국 관객의 취향을 제대로 공략한 화려한 볼거리와 음악의 힘이다. '엘리자벳'은 2010년 국내에 먼저 소개된 빈 뮤지컬 '모차르트!'의 극작가 미하엘 쿤체,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 콤비의 작품이다. '모차르트!'와 마찬가지로 고음 파트가 인상적인 삽입곡이 많다. LED 조명에 회전 무대, 3D 영상까지 사용한 무대미술은 화려함의 극치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과하게 힘은 실은 무대는 이 공연의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다. 조명 등 현란한 무대 기술을 바탕으로 한 잦은 장면 전환으로 관객은 드라마는 물론 각 장면의 미학적 가치마저 제대로 감상할 시간적 여유를 잃었다.
19세기 유럽이라는 낯선 시공간적 배경은 차치하더라도 모든 것을 가졌지만 고독했던 한 인간으로서 삶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운 엘리자베스의 삶에서 느껴지는 슬픔과 연민의 정서 역시 과잉 장식된 무대 속에 묻혀버리고 만다.
주인공 엘리자벳(김선영 옥주현)은 물론 의인화한 죽음(김준수 류정한 송창의)의 캐릭터, 해설자 역할의 루케니(김수용 박은태 최민철) 등 주요 6개 배역을 2, 3명의 배우가 번갈아 연기하기 때문에 배우의 조합에 따라 관객의 평가가 갈리는 점도 관람 시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공연 초반이라 앙상블의 호흡은 아직 불안하지만 윤영석(요제프), 이정화(소피) 등 조연들의 묵직한 연기는 돋보인다. 뮤지컬 '햄릿'을 연출해 한국 관객과도 친숙한 미국 출신의 로버트 요한슨이 연출했다. 5월 13일까지. (02)6391-6333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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