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소설 관습을 극복하려는 줄기찬 노력으로 주목 받는 소설가 김태용(38)씨가 두 번째 단편집 <포주 이야기> (문학과지성사 발행)를 냈다. 2008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인 첫 단편집 <풀밭 위의 돼지> 에서 의미 생성에 얽매이지 않는 언어 실험의 첨단을 보여줬던 김씨는 이번 작품집에서는 이야기 실험이랄까, 소설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이야기의 전형을 깨뜨리는 작업에 매진한다. 그는 첫 장편 <숨김없이 남김없이> (2010)에서 이미 시간 흐름과 인과 관계에 예속되지 않은 파격적 서사를 시도했는데, 스스로도 "첫 장편을 쓰면서 소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숨김없이> 풀밭> 포주>
김씨의 문학적 변모를 분명히 드러내는 수록작은 '허리' '머리' '머리 없이 허리 없이' 세 편. '허리'의 화자는 첫머리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이런 식이 가능할까. 불가능하게 시작할 수는 없을까. 시작은 없고 중간과 끝만 있는 이야기는 어떨까"라고 자문한다. 입원 환자인 '나'는, 짐작대로, 일관된 줄거리로 요약되지 않는 횡설수설의 독백을 내내 쏟아낸다. '나'는 스스로를 '그'라고 불러도 보고, 환의(患衣ㆍ환자복)와 환희, 글자꼴이 비슷한 두 단어로 말장난에도 몰두하고, 간호사들에게 짓무른 사과를 받고는 "육체가 뭉개지고 몸의 구멍 밖으로 분비물이 흐를 때까지" 병상에서 몸을 섞고 싶다는 욕구도 느낀다. '나'는 또 번번이 병원에서 탈출하다 붙잡히는 동료 환자를 관찰하는데, 막바지로 갈수록 '나'가 그 환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점점 커진다. (전통적 의미의) 이야기는 물론, 화자까지도 해체시키는 새로운 '이야기'의 출현이다.
'머리' 역시 외부 세력에 이야기를 강요 당하는 화자의 독백을 통해 기존 소설 화법을 끊임없이 회의한다. 결국 '거대한 손'에게 붙잡힌 그가 유언처럼 내뱉는다. "나는 쪼개졌고 그게 끝이라고 말해도 끝이 나지 않겠지만 세계의 문장은 이렇게 끝날 것이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시오." 작가 김씨가 설명한다. "보통 소설은 인생이나 세계의 단면을 정교한 플롯을 통해 완결성 있게 담아내는 이야기로 여겨진다. 나 또한 '소설=이야기'임을 부정하지 않지만 과연 하나의 인생을 하나의 이야기로 끝낼 수 있는가, 다른 이야기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끝날 수도 없다, 이것이 그가 새로운 이야기 방식을 모색하는 이유인 셈이다.
수록작 8편 중 가장 먼저 쓴 '포주 이야기'와 가장 늦게 발표한 '머리 없이 허리 없이' 사이에서 이같은 문학적 고민의 궤적이 뚜렷이 감지된다. 전자는 늘그막에 배운 문자로 생애 첫 글을 쓰려 하지만 '나는 포주였다'는 문장만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노인의 이야기로, 독특하면서도 구성이 꽉 짜인, 그러니까 기존 소설의 문법에 가까운 작품. 그에 비해 잃어버렸던 혹은 내다버렸던 아들을, 죽음을 앞두고서 만난 남자의 독백을 담은 후자는 '허리' '머리'에서 시도된 새로운 화법과 주인공 인생에 관한 완결된 서사를 절충한 작품이다. 이 빼어난 성과물이 "이야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금의 고민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작가의 행보를 기대하게 한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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