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서양철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경성제대 철학과 출범 이후다. 이 대학을 나온 국내 서양철학 1세대로 신남철, 박종홍, 안호상, 김태준, 유진오, 배상하, 고형곤 등을 꼽는다. 당시 국내 서양철학계는 박종홍, 안호상 등이 관념론적 경향을, 신남철 박치우가 유물론적 경향을 대표했다. 하지만 남북 분단이라는 불행한 정치 현실은 철학하는 방법이 달랐던 이들마저 남과 북으로 갈라 놓고 말았다.
남쪽의 일부 철학자들이 독재 정권의 이데올로그 역할을 톡톡히 하며 서양철학자로 명성을 쌓는 동안 북으로 간 1세대 서양철학자들은 오래도록 잊혀졌다. 특히 빨치산 유격투쟁에 정치위원으로 직접 참가했다가 한국전쟁 직전 태백산 골짜기에서 토벌 당해 숨진 박치우(1909~1949ㆍ사진) 같은 이의 철학 활동을 짚어보는 것은 금기나 다름 없었다.
위상복 전남대 철학과 교수가 박치우의 철학을 재조명한 <불화 그리고 불온한 시대의 철학> (길 발행)을 냈다. 한국 서양철학수용사의 공백이라고 할 해방 전후 시기 좌파 철학자의 사상과 행적을 되짚어 본다는 의미가 자못 크다. 불화>
함남 단천 출신으로 1928년 경성제대 예과에 입학해 1933년 본과 철학과를 박종홍과 같이 졸업한 박치우는 서양철학 1세대 학자로는 드물게 논문과 시사 논평, 잡문 등 여러 편을 남겼다. 해방 이후 박헌영의 남로당 노선을 지지하며 1946년 말께 월북해 대남선전활동에 나섰고, 이어 1949년 여름 직접 빨치산 유격투쟁에 합류해 남하했다가 그 해 태백산 전투에서 사살됐다.
철학의 천재라는 소리까지 듣던 박치우가 연구에 몰두하지 않고 빨치산의 길을 택한 이유는 뭘까. 철학전문지 <철학> 에 발표한 논문 '위기의 철학'에서부터 그의 유일한 저서이자 김남천이 '해방 이후 출간된 책 중 최량의 서적'이라고 평한 <사상과 현실> 을 꼼꼼히 짚어 본 위 교수는 박치우가 소용돌이 치는 현실 속에서 양심과 지식인의 사명에 따라 몸을 던졌다고 총평한다. '위기의 극복은 실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외치며 이를 몸으로 보여 준 지식인의 면모를 만날 수 있다. 사상과> 철학>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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