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벌과 학생인권조례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폭력에 대한 엄한 처벌은 학생인권조례의 정신으로부터 논리적인 도출이 가능하다. 똘레랑스(관용)를 아는가? 진정한 똘레랑스의 실천자는 똘레랑스를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관용하지 않는다. 진정한 인권보호의 실천자라면 학교폭력 같은 중대한 인권 침해 행위에 대해 오히려 더 엄격해야 한다. 엄벌과 학생인권조례는 양립할 수 있다.
엄벌은 학교폭력에 대한 좋은 대책 중 하나이다. 물론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근본대책들은 모두 단기간에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다. 입시 위주의 경쟁교육을 극복하는 것이 근본대책이라는 주장을 보자. 어떻게? 그것은 우리 사회가 온 힘을 기울여도 긴 시간이 걸리는 어려운 일이다. 이것을 학교폭력의 처방으로 말하는 것은 사실상 아무런 대책도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정부ㆍ교육청ㆍ학교가 지금 당장 시행해 곧바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처방은 사실상 처벌 강화 외에는 없다. 모든 처벌 강화 조치가 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지혜롭게 가려서 하면 처벌 강화는 제법 좋은 대책이 될 수 있다. 물론 근본처방이 될 수 없고 효과가 아주 큰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당장 실행 가능하면서 이것보다 빠르게 효과를 낼 수 있는 처방도 달리 없다.
학교폭력이 문제될 때마다 처벌 강화를 대책으로 내놓을 거냐고? 물론 아니다. 처벌이 충분히 엄격하다면 엄벌의 효과는 없고 부작용만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학교폭력에 대한 처벌은 상당히 무른 편이다. 온갖 사소한 일로 학생들을 규제하는데 무슨 소리냐고? 온갖 사소한 것들을 규제하느라 폭력이라는 중대한 잘못에는 물러터지게 된 것이다. 처벌이 적절 수준으로 엄해질 때까지 처벌 강화는 타당한 대책이다.
우리나라에서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은 뒤늦은 감이 있다. 우리 학생들의 인권 상황이 매우 열악하기 때문이다. 굳이 조례 제정까지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조례 제정은 타당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생에 대한 인권 침해가 주로 학생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행되는 경우가 많다. 머리카락 규제부터가 그렇다. 주된 명분이 학생을 위한 입시공부다. 과도한 복장 규제, 방과 후에도 학생을 집에 못 가게 하는 강제보충수업과 강제자습 등도 그렇다. 사실 그것들로 인해 모든 학생의 입시 성적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공부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받는 고통은 매우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행위들이 끈질기게 지속되는 것은 학생을 위해서라는 명분 때문이다. 법적 강제가 필요한 상황이다. 진즉에 국회에서 법(학생인권법)으로 제정했어야 마땅했다.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학교폭력이 더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그런 경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학교폭력의 감소 요인이 될 수 있다. 조례로 인한 인권의식의 향상은 학교폭력의 감소 요인이다. 그리고 조례가 정착되면 학교의 관심이 학교폭력에 더 많이 집중될 수 있다. 머리카락 등 온갖 자질구레한 것까지 규제하느라 낭비되었던 에너지가 절약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조례가 정착되면 학교규율이 권위를 회복할 수 있다. 지금의 학교규율은 학생에게 권위를 상실했다. 학생들이 죄의식을 느낄 수 없는 시대착오적인 일에 규율을 마구 적용했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는 무가치한 일에 학교규율이 적용되는 것을 막아 학교규율의 권위를 높일 수 있다. 물론 조례로 인한 학교폭력의 감소 효과를 과장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반대 방향에서의 또 다른 과장을 불러 올 뿐이다.
그 동안 엄벌 대책은 진보진영에 의해, 학생인권조례는 보수진영에 의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진보와 보수는 적절하게 대립하고 갈등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엄벌과 학생인권조례는 적극적으로 함께 하는 것이 옳다.
이기정 서울 창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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